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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조선총독부보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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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조선총독부보다 위험하다?

입력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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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친일 청산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럽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일제와 조선총독부보다 끔찍했던 것이 무엇일까? 대부분 그런 것이 있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그런데 총독부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고 그것이 현재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김대중 정부 말기에 교육부총리를 지냈고 학내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낙하산식 인사를 통해 성신여대 총장 자리를 꿰찬 이상주씨다.

이씨는 얼마 전 사립학교 관계자들이 열린우리당의 개혁안에 반대해 가진일종의 결의대회에서 열린우리당 안은 “일제시대 총독부가 들어왔을 때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고 언성을 높인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은 사학 비리를 시정하고 왜곡된 교육 현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현재 이사장이 갖고 있는 교원임면권을 교장이 갖도록 하고 설립자 친인척의 이사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씨를 비롯한 사립학교 관계자들과 수구세력은 사학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공산주의적 발상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지만 이 법안은 결코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핵심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초 사립학교 관계자들이 장악한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단체들이 청원한 사립학교법 개혁안을 오히려 개악시키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군사독재 시절에도 교원임면권은 이사장이 아니라 교장이 갖도록 해 사학 소유주의 족벌 경영으로부터 사학의 자율성을 지켜주려고 했다. 일반 기업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책임져 나가는것이 이미 세계적인 대세인데 하물며 공적인 교육에 있어서 소유와 경영을분리하여 교장이 교원임면권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 무슨 급진적 발상인가?

이 점에서는 교육 정책이 오히려 민주화 이후 군사독재 시절보다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씨는 결의대회에서 열린우리당을 “사학을 일방적으로억압하던 군사정부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정말 웃기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상주씨가 사실은 군사독재 시절, 그것도 광주 학살의 피가 채 가시기도 전인 80년대 초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으로 군사독재의 교육 정책을 담당했던 당사자였다는 사실이다.

전두환의 앞잡이로 사학 억압에 앞장섰던 그이거늘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사학을 억압한 군사정부 운운하니, 그 뻔뻔함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는 이씨 같이 전두환 비서관, 강원도 사회정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며 군사독재의 수족이었던극우 수구세력을 알다가도 모를 이유로 소위 ‘국민의 정부’의 교육부총리와 같은 요직에 앉힘으로써 일종의 면죄부를 준 것이다.

그러나 진짜 위험하고 소름이 끼치는 것은 이씨의 이중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간의 행적을 볼 때, 그리 진보적이지도 않은 열린우리당의 개혁안이총독부보다 위험하다는 것이 단순한 비유를 넘어서 이씨의 진심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그리고 그 같은 사고방식이 일제로부터 해방 정국 등에서 보여준 한국의 극우 수구세력의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제헌의회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반민족행위자 처벌법을 만들어 친일세력에 대한 심판에 나섰을 때 이승만을 비롯한 극우세력은 이들을 빨갱이로 몰고 빨갱이와 싸우기 위해서는 경찰 간부들의 친일 경력은 문제가되지 않는다는 논리, 다시 말해 빨갱이가 조선총독부보다 더 위험하다는 논리로 친일 경찰을 내세워 소장파 의원을 구속하고 처형한 바 있다.

이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총독부보다 더 위험한 일이 바로 이 같은 이상주식의 사고방식, 극우 수구세력의 사고방식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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