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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5> 이영훈 낙성대경제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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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5> 이영훈 낙성대경제硏 소장

입력
200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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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대는 우리 역사의 암흑기로 여겨져 왔다. 일제의 일방적 수탈 아래 식민지 조선의 민중은 궁핍과 질곡에 신음했다는 것이 전통적 역사 인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학계 일각에서 이런 인식은 식민지 조선의 실상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커다란 발전이 이뤄졌고, 당시 이식된 근대적 자본주의의 토양이 1960년대 이후 비약적 경제성장의 한 요인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앞장서 있는 사단법인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영훈(李榮勳·53·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소장을 만나 보았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이미지를 수정하게 된 개인적 동기는.

"1990년에 일제의 조선토지조사사업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전국을 돌며 토지대장 등 원자료를 수집했다. 경남 김해 지역에는 대량의 원자료가 남아 있었다. 자료를 보고 교과서와는 너무 다른 내용에 깜짝 놀랐다. 토지 신고를 하게 해서 무지한 농민들의 미신고지를 마구 빼앗았다는 교과서의 기술과 달리 미신고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한 행정지도를 했고, 토지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계도·계몽을 반복했다. 농민들도 자신의 토지가 측량되고, 지적(地籍)에 오르는 걸 보고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 결과 분묘, 잡종지를 중심으로 0.05% 정도가 미신고지로 남았다. 그때 우리가 갖고 있던 식민지 조선의 이미지는 가공의 창작물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토지조사사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일제의 식민통치사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의 영구 병합이 식민지 통치의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탈·약탈이 아니라 일본 본토와 동일한 제도와 사회 기반을 갖춘 나라로 만들어 영구 편입하려는 야심찬 지배계획을 갖고 있었다. 근대적 토지·재산 제도 도입은 이를 위한 과정이었다."

―일제 식민지 통치를 미화한다는 오해를 살 만한데….

"일제가 조선을 영구 병합하고자 한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계획이었다. 일본 내부에서도 독자적 역사를 가진 문명 민족을 동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엄청난 비용을 치를 것이니 건전한 협조 기조 위에서 대한제국이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처했으면 식민지화를 피할 기회도 있었다. 영구 병합을 위한 조선의 근대화는 민족의식의 고양과 저항을 부른다는 기본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일제 식민지화 이전 조선의 경제 상황은.

"1910년 이후는 근대적 통계 자료가 있으나 그 이전은 직접적 자료가 없다. 그러나 마지기 당 소작료 자료, 쌀값 상승을 보여주는 간접적 자료 등을 통해 대체적 윤곽을 그릴 수는 있다. 큰 추세로는 18세기를 거치며 1인당 소득이 서서히 떨어지다가 19세기 후반 급격히 감소했다. 1750년을 정점으로 농촌의 장시(場市) 숫자, 인구, 쌀 생산성 등이 일제히 떨어졌고, 쌀값이 오르고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등 경제침체의 강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의 경제적 변화는.

"침체 일로의 조선 경제가 1910년을 전후해 상승 곡선을 그린다.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유입, 근대적 시장제도의 정착, 소유권 제도의 정비, 근대적 기업제도와 상법, 거래 안전성을 보장하는 신탁, 통신, 운수의 발달 등이 뚜렷하다. 식민지 시대를 걸쳐 총 80억 달러의 자본이 유입됐고, 일본인들의 농장과 공장이 생기면서 한반도 지역 단위의 GDP가 상승하고 1인당 GDP와 생활물자 소비량 등이 크게 늘었다. 1920·30년대 GDP는 연 평균 4% 정도 상승했다."

―식민지 민중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나.

"그렇다. 무엇보다 인구가 늘었다. 19세기 내내 인구가 감소하다가 20세기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인구는 위생이나 전염병 등과도 관련이 있어 직접적 경제 자료는 아니나 당시의 경제상황을 추정하게 하는 자료다. 식민지 시대 한반도 인구는 그 이전의 1,700만명에서 3,000만명(해외 이주 300만명 제외)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경제력이 성장한 것이다."

―당시 세계 경제에서 연 평균 4% 성장의 의미는.

"1920년대는 세계경제의 침체기였다. 당시 아무리 호경기라도 연 2% 성장을 넘긴 나라는 거의 없었지만 일본 자본주의는 연 3% 이상의 지속적 성장을 계속했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 발전은 한반도와 만주, 대만을 포함한 일본경제권에 공통된 성장의 결과였다."

―일본 자본주의에 특별한 성장 요인이 있었나.

"활발한 자본 수출이다. 일본은 자국 통화와 1대1로 교환할 수 있는 식민지 통화권, 즉 엔화를 공용화로 하는 엔통화권을 창출했기 때문에 달러나 금 지불 부담을 지지 않고 대량의 자본을 대만과 조선, 만주에 투입할 수 있었다. 대량 투자와 지역 개발로 조선의 메리야스나 신발 등 공업제품이 만주에 수출되는 등 일본 경제권 내의 시장·분업 관계가 심화해 활발한 상품·자본 이동을 불렀다."

―영국 등도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았나.

"영국 등은 식민지에 공장이나 자본재, 중간재를 수출해 산업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서구 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원료 수탈형이었다. 일본과 달리 영구 병합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인도라는 주식회사를 영국이 투자해서 경영하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상업적 투자를 했다. 그것이 제국주의 원래의 모습이다.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는 그런 틀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인종적으로 비슷하고, 문화적으로 상당히 유사해 하나의 커다란 일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일제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행운이었나.

"1941∼45년 북한 지역에는 엄청난 중화학 공업이 건설됐고 그 직접적 수혜자는 북한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상당 부분이 파괴됐지만 처음 만들 때가 어렵지 복구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북한은 시장경제 제도를 청산한 결과 기아의 늪에 빠졌다. 반면 일제가 구축한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보존하고 발전시킨 한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따라서 일제가 남긴 물적 유산이 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가는 의문이다. 다만 식민지 당시 정착된 시장 경제 시스템을 해방 이후 한국이 때려 부수지 않고 미국의 주도 아래 다시 건설된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선택이 빛난다."

-일제 식민지 통치가 자주적 자본주의 발전 가능성을 오히려 왜곡했다는 게 통설 아닌가.

"우리는 18·19세기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추계에 따르면 1910년 식민지 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달러(1937년 가격으로는 약 60달러) 수준이었다. 산업시설도 없었고 대단히 빈곤한 상황이었다. 자본축적률이 낮고, 인구의 80∼90%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사회였다. 그나마 18세기 이래 장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일종의 도덕적 가치나 명분론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근로규율이나 근로의욕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하면서 스스로 해체될 심각한 위기 상황이 이어졌다."

―해체 위기란 민란 등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사회가 자기 통합력을 상실할 때, 민중이 지배계급의 도덕성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때 폭동이 일어난다. 19세기 들어 1840년 경부터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약 50년 간 농민들이 집단적 반란에 나선다. 조선왕조 지배계급, 즉 왕족이나 관료가 더 이상 건전한 통합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됐고, 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끌고 나갈 선진적 이데올로기를 결여했다. 닫힌 사회 공통의 폐색점에 이른 상황이었다. 사실 식민지 초기에 우리 지식인들은 19세기를 되돌아보며 참 역사가 부끄럽다는 얘기를 많이 했으나 해방 이후 그런 인식을 모두 정체론이라고 몰아 붙이며 역사를 밝고 진취적으로 기술해 왔다. 그러나 역사의 참 모습을 외면하고서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황영식 편집위원 yshwang@hk.co.kr

●이영훈소장 약력

1951년 9월 대구, 53세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경제학 박사 한신대 조교수 성균관대 부교수, 교수 서울대 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장 저서 '조선사회경제사' '맛질의 농민들' '한국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특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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