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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허노중 코스닥위원장 ― 故 이장표 조선비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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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허노중 코스닥위원장 ― 故 이장표 조선비료 회장

입력
200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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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나셔서 깜짝 놀라 깼어요. 바로 그날 아침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허노중(許魯仲·56) 코스닥위원회 위원장은 '평생의 은인' 고 이장표(李璋杓·1977년 작고) 조선비료 회장 가족과의 2대에 걸친 깊은 인연의 타래를 꿈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2년 앞서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허병·許秉)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회장까지 너무 이른 나이에 일기를 마쳤다는 소식에 청천벽력의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아버님과 이 회장님은 어려울 때 서로를 도와준,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였습니다. 두 분 모두 59세로 일찍 돌아가신 것도 지금 생각하니 묘한 느낌입니다."

허 위원장은 당시 이 회장의 장남 이병일(李炳一·56) (주)조비 회장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 "아버님처럼 모셨던 이 회장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그는 "그 때 또 한 분의 아버님을 잃었다는 슬픔에 가슴이 찢어졌다 "고 말했다.

허 위원장의 선친과 이 회장은 대구에서 함께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 회장이 서울로 회사를 옮기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부친이 병마로 사업을 접으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어 허 위원장은 66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부모님과 3남4녀의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허 위원장은 당시 서울대 상대에 합격했지만, 부친이 "집안 형평상 유학은 불가능하니 포기하든가 아니면 대구에서 돈을 직접 벌어 학교를 가라"며 만류, 무산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서울로 가겠다는 허 위원장의 끈질긴 고집에 부친은 결국 손을 들고, 병환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아들과 함께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친이 찾아간 곳은 서울 사직터널 뒤 이 회장의 자택. 수년 동안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부친을 이 회장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막역한 친구를 대하듯 달려 나와 반갑게 맞았다. 이 회장은 사정을 듣고서는 "무슨 얘기냐. 노중이는 내 아들이나 다름없는데 나에게 맡겨 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회장의 도움은 허 위원장에게 단순히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대주는 물질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부친에게 "대구에 있지 말고, 서울에 올라와 회사에 원료를 납품하라"며 납품업체를 운영하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부친은 서울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허 위원장은 입주과외 등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면서 공부에 매진, 대학 4학년 때인 71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허 위원장은 "이 회장님은 주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말없이 도움을 주셨다"며 "이 회장님으로부터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항상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병중인 부친이 골프를 못했지만 "잔디를 걷는 게 병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골프장에 데려갈 정도로 세심했다고 허 위원장은 회상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대구에서 수창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죽마고우 이병일 회장과의 우정도 다시 연결해주었다. "병일이와는 형제와 다름 없어요. 집안이 부유해도 친구들과 만나면 전혀 티를 내지 않고 힘든 친구를 보면 도움을 주어야만 직성이 풀리죠. 부전자전인가 봐요."

허 위원장은 89년 이병일 회장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을 때 찾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 때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재무관으로 근무해 빈소를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재경부 대외경제국장과 증권전산원 사장을 거쳐 현재 코스닥위원회를 맡고 있는 허 위원장은 "병일이를 만나면 항상 '두분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건강하게 지내면서 오랫동안 형제의 인연을 맺어가자'고 말한다"고 한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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