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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저 눈 같고, 솜 같은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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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저 눈 같고, 솜 같은 종이

입력
200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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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엔 이사를 하거나, 새로 지은 집을 방문할 때는 꼭 성냥을 가져갔다. 때로는 안방 문 위에 쌀을 일 때 쓰는 조리를 걸고, 그 조리에 성냥을 담아두기도 했다. 불처럼 확 일어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UN 팔각표'나 '비사표' 말고도 꼭 그런 용도에 쓰라고 '돈표' 성냥이 있었다.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턴가 집들이의 기본 선물이 세제로 바뀌고, 휴지로 바뀌었다. 내 나이 열 세 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35년 전에 휴지를 처음 보았다. 그때 우리에게 휴지란 이미 배운 책을 찢은 종이거나 신문지뿐이었는데, 할머니 제사를 지내러 온 서울 고모부가 주머니에서 눈처럼 하얗고 솜처럼 푹신하며, 또 있는 듯 없는 듯 무게감도 잘 느껴지지 않는 얇은 종이 수건을 꺼내 '팽'하고 코를 풀어 던지는 것이었다.

아니, 세상에 코 한번 풀자고 저렇게 눈 같고 솜 같은 종이를 쓰다니. 그것도 수건처럼 여러 번 쓰는 게 아니라 단 한번 '팽'하고 버리다니. 아무리 흔해도 저러면 죄받지 않나 싶을 만큼 대관령 아래 산골 소년은 그런 고모부와 서울 사람들의 삶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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