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질을 하다 보면 비릿한 피냄새 때문에 비위가 상한다는 회사원 K(38)씨. 영업직인 그는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지만 양치질을 할 틈도 없이 쓰러져 자기 일쑤다. 특히 과음하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이가 심하게 시리고 잇몸까지 퉁퉁 붓는다.치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던 그는 최근 잇몸병 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처음 복용할 때는 시린 증상과 붓기가 가시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전보다 통증이 더 심해져 이제 음식물을 씹기 힘들 정도가 됐다. 부랴부랴 치과를 찾았지만 염증이 이미 잇몸 속까지 번져 치료가 어려워졌다.
P(28·여)씨는 몇 년 전 사랑니 4개를 모두 뺐는데도 마치 사랑니가 나는 것 같은 시큰한 통증이 생기고 입냄새가 심해져 남과 얘기할 때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다. 병원을 찾으니 예전에 사랑니를 빼면서 함께 치료한 어금니 중심부에 채워넣은 아말감 틈새로 음식물이 끼어 충치가 재발됐다는 것. 뿌리 부분까지 염증이 깊어져 고름주머니가 생기고 벌어진 치아 틈새로 빼곡하게 플라그(치석)가 끼는 바람에 잇몸병까지 나타나 결혼을 앞둔 그녀는 걱정이 태산같다.
충치나 잇몸병(치주염)이 없는 사람을 두고 "오복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만큼 치아를 건강하게 지키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80% 정도가 충치나 잇몸병을 앓고 있으며, 그 비율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가히 국민병이라 할 만하다. 충치와 잇몸병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부모가 어린이 충치 유발의 주범?
충치는 단 것 자체보다 구강 내 세균인 뷰턴스균이 당분을 분해하면서 배출하는 산(酸)에 의해 치아가 부식되면서 발생한다. 치아 표면의 법랑질은 사람 몸에서 가장 단단하며 수정과 경도가 비슷하지만 산에 유난히 약하다. 이런 법랑질이 산에 의해 녹거나 닳아 상아질이 노출되면 이가 누렇게 변색되고 온도에도 민감해져 시리게 된다. 또 이를 방치하면 신경까지 염증을 일으켜 심한 치통을 겪게 된다.
치아건강을 지키려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새겨야 한다. 아이가 보챈다고 별 생각 없이 우유 병을 물리는 부모가 있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습관이다. 우유 속의 젖당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산이 치아를 썩게 하므로 아이가 잠잘 때 우유 병을 물리는 것은 금물이다.
젖니는 10세를 전후해 빠지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돌이 되면 위아래 앞니가 나기 시작해 생후 30개월쯤 되면 20개가 모두 나는 젖니는 간니가 나오기 전 미리 길을 닦고 턱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의 바깥쪽을 싸고 있는 법랑질의 두께가 간니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충치에 대한 저항도가 약하다. 게다가 젖니의 충치는 진행속도가 빨라 잘 모르는 사이에 확산되는 경우도 많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치과 박기태 교수는 "이가 처음 나기 시작하면 충치가 없더라도 3∼6개월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2∼4세 아이 중에는 음식을 삼키지 않고 오랫동안 물고 있어 충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직접 음식을 떠먹도록 한다. 조미료와 설탕이 든 음식을 되도록 피하고 고구마 같은 섬유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이는 것도 구강 세척 효과가 있다.
잇몸 병 키우면 뇌졸중 될수도
어른이 되면 충치가 발생하는 빈도는 낮아지지만 잇몸병은 점점 늘어난다. 잇몸병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잇몸, 치주 인대, 치조골 등의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성인이 치아를 잃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잇몸이 자주 빨갛게 붓고 아프며 칫솔만 대도 피가 나면 잇몸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한누리치과병원 이철우 원장은 "칫솔질을 제대로 하고 1년에 한번 정도 치과 검진만 받아도 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잇몸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뇌졸중을 비롯한 전신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치대 연구팀의 임상실험 결과, 24개 이하의 치아(성인의 정상 치아는 모두 32개)를 가진 사람이 치아가 25개 이상인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 위험도가 57%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잇몸병이 치아를 지탱하는 뼈의 밀도를 감소시켜 치아가 빠지게 되는 등 골다공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폐경 후 5년이 되지 않은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투여한 결과, 잇몸병의 진행이 느려졌다. 에스트로겐 부족이 치아의 골밀도를 감소시키고 골다공증을 가속화한다는 얘기다.
이밖에 잇몸병이 조산이나 저체중아 탄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치대는 미국에서 매년 출생하는 4만5,500명의 조산아가 임산부의 잇몸병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잘못알고 있는 치아상식
사탕은 무조건 충치를 일으킨다?
설탕이나 엿을 주원료로 만든 알사탕은 치아를 썩게 한다. 그러나 최근 세균과 반응하지 않은 당분을 합성함으로써 이런 문제점이 개선됐다. 대표적인 예가 자일리톨. 그러나 자일리톨도 충치를 유발하지 않을 뿐 예방 효과는 없다.
임신 중에는 치과 치료를 받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 이를 뽑을 때 사용하는 국소마취제는 태아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오히려 치통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훨씬 태아에 나쁘다.
전동칫솔이 잘 닦인다?
전동칫솔은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아 구석구석 효과적으로 닦지 못한다. 또 장기간 사용시 과도한 압력이 가해져 치경부무모증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게다가 칫솔모를 제때 갈아주지 않으면 닦는 효과는 반감된다.
구강세정제가 충치를 예방한다?
많은 직장인이 점심식사 후 이를 닦기가 여의치 않아 구강세정제로 대신한다. 그러나 구강세정제는 입냄새를 줄여주지만 충치를 고치지는 못한다. 또 충치나 풍치로 발생하는 입냄새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소금으로 닦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
소금으로 이를 닦으면 잇몸을 소독하는 효과가 있으나 치아에는 좋지않다. 소금 입자가 커서 치아를 마모해 이를 시리게 하기 때문. 따라서 치약으로 이를 닦은 뒤 소금물로 입안을 헹구는 것이 좋다. 굳이 소금으로 이를 닦고 싶으면 진한 소금물 용액을 칫솔에 묻혀 닦는 게 좋다.
3·3·3 꼭 지켜요!
제대로 양치질만 해도 충치와 치주염 등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충치를 일으키는 뷰턴스균은 식후 3분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따라서 식후 3분 이내, 한번에 최소한 3분 이상, 그리고 하루에 3번 이상 이를 닦도록 한다. 그래서 '3·3·3법'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칫솔을 가볍게 잡고 칫솔모를 치아 뿌리에 45도 각도로 댄 뒤 치아 하나마다 20번 정도 진동하는 듯한 동작으로 작은 원을 그리면서 닦는다.
윗니를 닦을 때에는 윗니의 잇몸 쪽에서 아랫니 방향으로, 아랫니는 잇몸에서 윗니쪽으로 원을 그린다.
앞니의 안쪽은 칫솔을 안으로 세워 곧바로 넣은 다음 치아의 경사를 따라 큰 원을 그리듯 훑어내고 어금니의 씹는 면은 칫솔을 앞뒤로 움직이며 닦는다. 치주염이 있어 냄새가 많이 나거나 피가 나면 '바스법'으로 닦는다. 칫솔모의 한 줄을 치아와 잇몸이 맞닿는 곳 깊숙이 넣고 손을 가볍게 진동시키는 것이다. 피가 나도 멈추지 말고 계속 닦으며 잇몸 염증이 가라앉으면 보통 칫솔법으로 다시 돌아온다.
어린이는 '폰스법'으로 닦는다. 입을 약간 다물고 칫솔을 직각이 되게 댄 다음 치아와 잇몸에 작은 원을 그리듯 칫솔을 돌려가면서 닦고 그 다음으로 입을 약간 벌린 다음 칫솔을 아래 위로 닦으면서 옆으로 왕복한다.
부모가 칫솔을 잡고 아이의 이를 닦아줄 때에는 성인의 일반 칫솔법에 따른다.
칫솔모는 단면이 수평이되 너무 단단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것이 좋다. 칫솔 머리부분은 2∼3㎝ 크기가 적당하다. 일반인들은 칫솔모 줄이 3∼4개, 치주염이 심하면 2개 정도가 좋다. 칫솔은 2∼4개월마다 바꿔야 잇몸이 상하지 않는다.
/권대익기자
<도움말=서울대 치대병원 김영수 교수, 김지학치과 김지학 원장>도움말=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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