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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탄핵과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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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탄핵과 공영방송

입력
200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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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보수당의 거물 의원 윈스턴 처칠의 언행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국내외 문제에 대한 정견이 극단적이라는 이유였다. 처칠은 존 라이스 BBC 국장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처럼 방송시간을 사겠다는 제안까지 했으나 쓸모없었다. 초기 BBC의 정체성을 확립한 라이스는 정당내부 다툼과, 거리에서 외치는 정치는 보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정당 대표가 지명하지 않은 개별 의원도 방송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완고한 듯 하지만, 정치성을 배제한 전통이 세계 최고의 권위와 신뢰를 유지하는 바탕이다.■ 대통령 탄핵소추를 다룬 우리 TV 방송의 보도자세는 한심했다. 명색이 공영방송들이 물색없이 격앙된 것부터 그렇지만, 국민 반응을 '허탈과 분노와 충격'이라고 뭉뚱그린 것은 도무지 거슬렸다. 여론조사에서 탄핵은 잘못이라고 답한 국민이 70% 선을 넘나든다고 해도, 거리의 시민 반응을 허탈과 분노 일색으로 포장한 것은 자의적이고 선정적이었다. 실제 지역마다 두 세 명씩 등장한 시민 가운데는 다른 의견을 밝힌 이들도 있었다. 거리의 목소리를 취사선택한 보도내용 자체보다 편향된 규정을 앞세워 시청자에게 전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인 객관보도와는 거리 멀었다.

■ 대통령 고향의 반응을 부각시킨 것도 부적절했다. 국가적 중대사에 대한 국민 반응을 충실히 전할 의도였다면, 지극히 감성적일 게 뻔한 고향 주민 반응은 오히려 빼거나 달리 다루는 분별이 아쉬웠다. 늘 하던 대로 무심코 그랬다면 지각 없고, 고향의 분노를 마땅히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얄팍하다. 지역마다 열린 항의시위를 빠짐없이 비중있게 다룬 것도 객관적 사실보도로만 여길 수 없다. 의회주의에 충실한 BBC의 옛 '거리정치' 비보도를 곧장 인용할 계제는 아니지만, 거친 항의만 부각시킨 것은 다양한 민의를 균형있게 반영해야 할 공영방송의 정도(正道)에서 분명 벗어났다.

■ 이런 편향성보다 한층 개탄할 일은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내 위기가 닥칠 것처럼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는 보도를 쏟아낸 것이다. 이런 때 일수록 냉철한 보도로 국민의 이성적 판단을 도와야 할 공영방송이 스스로 먼저 격앙되고 선정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무책임하다. 헌법질서와 냉정한 대응을 강조하면 자칫 수구세력으로 몰릴 분위기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수구반동적 선동을 비난하던 공영방송이 의회타도를 선동이라도 하듯 흥분하는 것은 욕하면서 배운 꼴이다. 어떤 고상한 명분을 위하더라도 본분을 저버린다면, 공영방송의 부끄러운 과거 체질이 다시 거론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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