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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중국의 실험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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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중국의 실험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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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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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농민들에 대한 징세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인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유구한 세월 동안 농민 세금은 숱한 왕조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진(秦)나라 말기인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을 비롯해서 중국사의 격변기에는 언제나 과도한 농민 징세와 농촌 피폐로 인한 농민반란이 있었다.중국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농민 징세가 머지않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모양이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5일 중국의 의회라고 할 수 있는 전인대(全人代) 전체회의 업무보고에서 농민들에 대한 세금을 점차 줄여 5년 이내에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심각한 수준에 이른 도시·농촌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표방한 이래 중국은 불균등 발전전략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해 왔다. 일부가 먼저 부자가 돼서 뒤처진 부문을 끌어 올리도록 하자는 선부기래론(先富起來論)은 60∼70년대 우리의 고도성장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은 이 같은 발전전략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 세계 4대 무역대국으로 부상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 그대로 세계를 어디를 가나 '메이드 인 차이나'가 넘친다. 제조업과 IT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생겨나고 억만장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특히 농촌의 피폐와 소외는 심각하다. 최근 중국 사회과학원의 보고서는 도농간 소득격차가 4∼6배까지 벌어져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10여년 전에 농촌을 돌아본 중국정부의 고위인사는 "중국 농촌에는 이제 모든 것이 다 준비돼 있다. 진승·오광만 있으면 된다"고 농민의 흉흉한 민심을 묘사했다고 한다.

연안과 내륙간, 계층간의 격차도 날로 벌어지고 있고 환경파괴와 자원고갈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제 4세대 지도부는 이 같은 고도성장의 모순과 그늘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지속적인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 아래 대대적인 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 토대는 지난해 10월 공산당 대회(제16기 공산당 3차 전체회의)에서 채택한 '과학적 발전관'이다. 도시―농촌간, 계층간, 지역간 격차를 해소하고 발전과 자연을 조화시킨다는 이 발전관은 덩샤오핑의 선부기래론,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을 잇는 지도이념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의 지도부는 성장률을 낮추고 각 부문간 균형발전을 꾀하는 정책을 의욕적으로 시행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헌법에 사유재산권 보장과 인권존중 조항을 신설하는 등 인치가 아닌 헌법에 의한 법치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경제성장 속도조절과 균형발전 전략이라는 중국의 거대한 실험이 의도대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의 영도체제가 관철되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도 고도성장은 가능하다. 그러나 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권위주의 체제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발생한다. 중국은 바로 이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의식수준 향상은 지각을 뚫고 폭발하는 화산처럼 중국의 체제를 끊임 없이 위협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서구수준의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한가지, 중국의 지도부가 오랜 토론 끝에 나라가 직면한 문제점을 추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모습은 정말 부럽다. 오늘의 우리 정치판을 보니 더욱 그렇다.

이 계 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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