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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발리…" 3가지 인기 비결/시청률 껑충… 발리에서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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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발리…" 3가지 인기 비결/시청률 껑충… 발리에서 무슨일이?

입력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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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회장집 막내둥이로 유아독존의 전형이지만 알고 보면 상처 받은 영혼을 지닌 젊은이가 있다. 그에게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결혼 할 수밖에 없는 약혼녀가 있으니 또 다른 재벌가의 상속녀다. 두 사람은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과는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인 여자, 남자와 각각 사랑에 빠진다.' 이쯤하면 뻔하다. 드라마의 팔 할이 재벌집 아들과 가난한 집 딸의 애절한 러브스토리와 신분상승의 '대(大)로망' 아닌가?하지만 1월3일부터 방송중인 SBS 주말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은 좀 다르다. 시청률 20% 초반대, 10위권에 간신히 머물던 이 드라마가 1일 28%를 넘어서며 4위로 순위가 껑충 뛰었다. 대체 '발리에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포털 사이트 검색코너에서 갑자기 순위권에 든 안토니오 그람시.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설한 좌파 정치가이자 사상가가 갑작스럽게 인기 검색어 반열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발리에서…' 덕분이다.

가난 때문에 재벌집 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강인욱(소지섭)은 옆집에 사는 이수정(하지원)에게 그람시의 책을 빌려준다. 그리고 수정은 글로벌 그룹의 막내아들 정재민(조인성)에게 말한다. "너, 그람시 알아? 니네들 헤게모니가 우리를 바보로 만든대." 프롤레탈리아로서의 계급적 자각을 보여주는 대사다.

대사처럼 '발리에서…'는 계급간의 첨예한 갈등을 '사랑'이란 미명하에 숨기지 않는다. 재민과 재민의 약혼녀인 최영주(박예진)는 사랑 때문에 재벌가의 자식이라는 특권을 내팽개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영주는 자신의 과거를 조사한 예비 시어머니의 협박을 받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자"며 남자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애인에게는 "왜 나랑 결혼하고 싶어? 그거 불가능하다는 거 알지"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수정도 돈보다 사랑을 택한다는 상투적인 구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수정은 부잣집 아들 재민을 증오하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재민이 건네는 돈을 받고 치욕을 참는다. 그들에게 계급의 당면 과제, 즉 부를 대물림(부자)하거나, 먹고 사는 문제(가난한 자)는 사랑에 선행한다.

'발리에서…'의 또 다른 재미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간의 격차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 인욱은 재민에게 말한다. "너 한 달에 술값 한 천 만원 쓰냐. 누구는 자존심 버려가면서 3년 동안 모은 돈이다." 재민의 엄마는 "쓰레기 같은 것, 거지 같은 것"이라며 수정의 뺨을 때린다. 이처럼 막 나가는 '회장님 사모님'은 김수현 드라마를 빼고는 처음이다. 사랑으로 뭐든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이 드라마는 주지 않는다.

없는 집 자식의 전유물이었던 질투와 동경, 열등감이 재벌 2세에게서도 나타나는 것도 재미있다. 재민은 능력으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수정과 영주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인욱을 질투심 어린 눈으로 훔쳐본다. 대부분 재벌집 자식들이 아닌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계급간의 갈등과 열등감이라는 미묘한 문제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 건 네 명의 청춘남녀가 벌이는 복잡한 사랑 이야기다.

재벌 2세인 영주와 재민, 가난한 수정과 인욱의 관계가 얽히고 설키며 누가 누구와 사랑에 골인할 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천국의 계단'의 재미가 단순미라면, 이 드라마는 예측불허에 매력 포인트가 있다. 물론 이 드라마 역시 어느 순간 '…그래서 신데렐라가 만들어졌다'며 시청자들에게 배반감을 안길 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허접한 트렌디 드라마의 겉모양을 하고 매우 파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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