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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달려라 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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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달려라 울엄마

입력
200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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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트콤에는 몇가지 법칙이 있다. 매회 사건이 벌어지고, 등장 인물들은 거기에 매우 과장되게 반응하며, 한 회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현실성이 없다.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SBS '압구정 종갓집'(월∼금 오후 8시50분)에서, 나름대로 안정된 직장이 있는 준규(박준규)와 서영(지수원)이 나이 들면 언제 퇴출 당할지 모른다는 동료들의 얘기에 단돈 200만원으로 창업을 시도하고, 모두 망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일만에 직장으로 돌아온다. 이러니 많은 이들이 시트콤을 유치하고 황당한 장르로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트콤이 많은 사람을 웃기고 때론 작은 감동마저 준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KBS2 '달려라 울엄마'(월∼금 오후 9시20분)는 사람들이 왜 그 '유치하고 황당한' 시트콤을 보는 지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분명히, 이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의 행동은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많다. 어머니가 아프자 자식들이 집안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마치 암흑가의 인물들처럼 행동하고, 어머니는 큰 아들이 여자친구만 위하자 질투를 느껴 갖은 방법으로 아들의 여자친구를 구박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이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달려라 울엄마'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달려라 울엄마'의 묘미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묻어나오게 한다는 데 있다. '압구정 종갓집'의 등장인물이 아무런 고민 없이 직장을 관두고 마치 장난치듯 창업을 한다면, '달려라 울엄마'속 영재(이휘재)는 직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회장 아들에게 온갖 아부를 해야 한다. 이들의 행동은 과장됐지만, 그들은 자신이 '사는 것' 자체에는 진지하다. 영애(김영애)를 비롯한 중년의 세 여성이 건강검진을 앞두고 조그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곧 죽기라도 할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분명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이제 정말 '죽음'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 사람들의 공포와 인생에 대한 허무감만큼은 진실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달려라 울엄마'는 그런 과장된 묘사를 통한 웃음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을 세심하게 집어내며 때때로 웃음 이상의 작은 감동까지 선사한다. 소중했던 사랑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안 되는 영어실력으로 더듬더듬 사전을 찾아가며 그때 들었던 팝송을 해석하는 영애의 모습이나,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의 오랜 애증과 오해를 조금씩 풀어나가며 고부간의 정을 보여주는 승현(서승현)의 에피소드는 이 시트콤이 이제 중년여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끌고 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극 드라마가 그러하듯, 시트콤도 모든 작품이 재미와 현실성 양쪽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그저 하루에 한 번씩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는 모습을 TV로 보며 웃을 수 있도록 만드는 그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일상에 대한 서늘한 관찰과 풍자로 시트콤 중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던 SBS '똑바로 살아라'가 종영된 지금, '달려라 울엄마'가 주는 '그나마 현실적인' 웃음은 그래서 더욱 가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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