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기업들 "정치의 덫" 벗어나라
알림

[한국시론]기업들 "정치의 덫" 벗어나라

입력
2003.11.05 00:00
0 0

검찰이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정치권은 특검제 도입, 대통령의 선거자금 선공개 등을 요구하며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재계도 검찰이 기업들에까지 수사확대 방침을 밝히자 초긴장 상태이다.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돈을 냈을 뿐인데, 수사까지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주장이다.문제는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를 할 경우 기업들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가뜩이나 좋지않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부실회계를 드러낼 경우 기업의 생명인 대외신인도를 하락시킬 수 있다. 또 기업주나 임원들을 소환할 경우 경영의 혼란과 사기저하를 가져온다. 더 나아가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주저앉힐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불법 정치자금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일단 정치권과 재계는 일체의 수사를 검찰에 맡기고 적극 협조하여 정치자금 비리의 전모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물론 검찰은 정치적 압력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국민의 감시하에 철저한 공개 수사를 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단죄가 뒤따라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을 내놓고 재신임을 묻는 마당에 정치개혁을 못 이룬다면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정치의 근본 개혁을 위해 정치자금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정치자금을 받거나 쓸 때 선관위에 등록된 단일 은행계좌를 이용하고 수표나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자금을 낼 때 일정 금액 이상은 낸 사람도 공개하여 이면거래가 없도록 해야 한다. 한편 돈 안드는 공정 선거를 위해 완전선거공영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후보의 등록과 정견 발표 등 선거운동 일체를 선관위가 관리하여 돈이 없어도 소신과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당선될 수 있는 민주적 선거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문제는 기업들에 대한 수사이다. 수사가 시작되면 기업경영의 혼란과 경제불안이 올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소의 혼란과 불안이 있더라도 기업은 정치자금 비리의 실체를 밝히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경제의 밑동을 썩게 하는 정치비리로부터 벗어나 자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몸속에 난치성 종양이 있을 경우 수술의 불안을 떨치고 과감하게 몸을 맡겨야 생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물론 기업이 제공한 정치자금이 이권을 얻거나 비리를 감춰달라는 대가로 준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협에 대응하여 어쩔 수 없이 준 보험료 성격이라면,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민에게 더 큰 보답이라는 차원에서 사면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국민의 정서가 허용할 때 가능하다.

과거에는 군대를 양성하여 영토전쟁을 했다. 군대가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그 나라 영토의 면적이 달라졌다. 이제는 기업을 일으켜 경제전쟁을 해야 한다.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추었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정치비리의 덫에 걸려 편법으로 부실성장을 했다. 그 결과 위환위기를 맞아 붕괴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아직도 우리 경제는 기업들의 분식회계와 정경유착비리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각한 상태이다. 주가수준이 낮고 증권시장이 취약하여 국부유출이 이뤄지는 반면 외국 투자자본이 우리나라를 피하고 있어 성장의 동력이 꺼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나라는 빚더미 후진국으로 전락한다.

기업들은 죽었다 다시 산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불법정치자금의 실태를 밝히고 정치 비리의 덫에서 해방을 선언해야 한다.

이 필 상 고려대 교수·경영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