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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생태건축연구소·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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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생태건축연구소·연구회

입력
2003.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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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거친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지만 최초의 집은 동굴이나 초막, 흙집 같은 자연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집은 자연과 멀어졌다. 서양의 최첨단 공법은 인공적인 기능의 극대화로 달려갔고 급기야 '신은 자연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도시를 창조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국사회에서는 거기에다 하나를 더 보태 집이 축재 수단까지 되었지만. 생태건축연구소·생태건축연구회는 집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꿈을 꾸는 이들의 모임이다. 건축가와 공학자, 시공업자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생태건축연구소에서 여는 생태건축강좌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 생태건축연구회를 만들었고 이들은 힘을 모아 가장 환경친화적인 건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생태건축연구소를 태동시킨 건축가 이윤하(40·노둣돌 소장)씨는 강원도 강릉 사람이다. 그가 살던 곳은 그 어디보다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이 많은 곳이다. 흙과 나무가 이어져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살지 않으면 자연스레 집도 공기와 바람속에 풍화되어 사라지는 한옥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축형태였다.그러나 95년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서울에서 그가 건축해야 하는 건물들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한옥의 자연친화적인 특성을 현대에 되살리는 생태건축을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1998년 지인들과 생태건축연구소를 만들었다. 이것은 한겨레문화센터에 생태건축학교 강좌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해 가을에 생겨난 생태건축학교 강좌는 3개월 단위로 진행됐는데 관심있는 수강생이 몰려들면서 지금까지 250여명을 졸업시켰다.

수강생 가운데 생태건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만든 것이 생태건축연구회이다. 그러나 생태건축연구회라고 아마추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건축연구회 회장 역시 건축가인 손영태(41·음성건축 대표)씨다. "생태건축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모든 건축가들의 고민이다. 나 역시 생태건축을 고민하면서 국민대에서 하는 목조교실 강좌도 듣고 생태건축학교 강좌도 듣게 됐다."

생태건축연구회의 회원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시골에 자연친화적인 집을 짓고 싶어서" 온 사업가가 있는가 하면 대학 건축과 학생들도 있다. 치과의사, 한의사, 교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김대영(42·(주)솔스티스종합건설 대표)씨는 건축시공회사 사장으로 생태건축연구회에 가입한 후 생태건축시공에 적극 나서게 됐다. 이석준(31·상지대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씨는 산업공학 전문가로 생태건축에 빠져든 후 전공과 접목한 건축재료 분야에 준전문가가 됐다. "최근에 가구업체가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무단방류한 사건이 신문에도 났지만, 페인트 벽지 접착제 등 공장을 통해 대량생산되는 대부분의 건축자재에는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들어있다. 이것을 사용한 주택에서 살면 서서히 방출되는 포름알데히드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이것을 외국에서는 발암가능물질로 분류해 체내에 축적되면 위험한 것으로 본다"는 이씨는 크게는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위해, 작게는 인간에 무해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생태건축이 중요하다고 본다.

생태건축연구소 강사 중 한 명인 건축가 홍석종(38·노둣돌 부소장)씨는 이를 "대승적인 차원에서는 재료가 환원되는가, 소승적인 차원에서는 재료가 안전한가를 살피는 것이 생태건축"이라고 재미나게 표현한다.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풍경건축을 전공한 홍씨는 99년말부터 생태건축연구소에 합류했다.

생태건축에서는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수동적인 생태주택)와 '액티브하우스'(active house 능동적인 생태건축)로 생태건축을 분류한다. 패시브하우스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활용한다면 액티브하우스는 풍력 조력발전기 등 적절한 장비를 첨가함으로써 에너지활용도를 극대화한다.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쓰고 재료가 순환되게 하는 것은 다 똑같다.

이윤하씨가 설계한 건축물로 예를 들자면 전남 곡성 태안사 경내에 올 여름 완공한 '조태일 문학관'은 패시브하우스. 이 곳은 카페테리아 건물과 기념관 건물 두 채로 크게 대별되는데 카페테리아 건물은 아예 땅 속에 지어 그 자체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씨는 "땅속에 집을 지으면 5도 정도 상온과 차이가 나면서 항온을 유지한다"고 들려준다. 기념관 건물 역시 선큰(sunken) 형식으로 땅을 파고 앉혔는데 "바람을 막아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대신 더울 것을 우려하여 기념관 아래에 수변공간을 만들었다"고 풀이한다.

반면 2000년 완공한 전북 무주의 '푸른꿈 고등학교' 건물은 액티브하우스이다. 15㎾ 짜리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는데만 2억3,000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 쓰는 전력은 이 발전기로 충분하다고 한다. 오수를 정화해서 화장실용으로 쓰는 시설도 갖추었다.

오대산 자락에 지은 60대 부부의 은퇴후 주택인 '세진당'은 미기후를 활용해 여름에는 앞에서 오는 바람을 충분히 받고 겨울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막도록 설계를 했다. 이것이 패시브하우스로서 특성을 살린 것이라면 소규모 풍력발전기를 설치, 액티브하우스로서 특성도 살렸다. 대전에 지은 '심양당'는 남북으로 긴 대지에 맞추느라 집도 남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하면 햇볕이 안쪽으로는 안들어가는 것이 고민. 이씨는 남북으로 건물을 세 채로 끊은 후 그 사이를 긴 복도로 연결하여 안쪽 끝까지 햇볕이 들어가게 했다.

그가 만든 집에는 어디나 우수(雨水)탱크가 들어간다.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시설이다. 이씨는 "3톤 정도의 우수탱크만 집집마다 갖춰서 빗물을 재활용해도 홍수 같은 것은 나지 않을 것"이라며 생태건축이 널리 보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건축연구소는 생태건축강의와 더불어 내년부터는 출판활동도 할 계획이다. 첫 책으로 파울로 솔레리(86)의 전기 겸 작품론을 펴낼 계획이다. 솔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로 건축과 생태학을 결합한 생태적인 건축학(acology)라는 용어를 창안한 이 분야의 선구자이다. 그는 70년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에 인구 5,000명이 살 수 있는 생태마을 아크로산티를 짓고 있다.

생태건축연구소는 또한 국내에서 생태적인 건축재료가 널리 생산되도록 업체들의 제품을 소개하고 평점을 매기는 책자도 만들 계획이다. 생태건축 자체가 적다 보니 생산이 적고 이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이 생태건축의 고민.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업체들의 생산을 독려해보겠다는 의미이다. "우수저장통 같은 것은 정수기를 만드는 한국에서 못 만들 설비가 아닌데도 소비가 적다 보니 생산을 안하고 결국은 독일제를 사다써야 한다"고 이씨는 실상을 들려준다.

이렇다 보니 생태건축을 선택하면 평당 건축비가 400만∼450만원으로 껑충 뛴다. 생태건축연구회 신욱희 부회장(47)은 경기 양평에 전원주택을 자연친화적으로 짓고 싶어서 생태건축학교 강좌를 들은 경우. 그는 "생각보다 건축비가 너무 비싸게 나와 집 짓는 것을 조금 미뤘다"며 "생태건축이 보편화한 독일에서는 기존 주택보다 불과 10%정도의 돈만 더 들이면 패시브하우스를 지을 수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윤하씨는 "자연을 지키는 생태건축은 이제 새로운 화두가 아니라 모든 건축가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필수적인 명제가 됐다"며 "정부가 생태건축이 보편화하도록 좀더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생태건축"이 갖춰야할 4가지

흙이나 돌, 짚 같은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짓는다고 생태건축은 아니다. 생태건축은 건축물이 다음 네 가지 요소에서 자연계의 생태고리와 연결되어야 한다.

재료의 순환성

건축재료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흙벽돌 나무 돌 짚풀 같은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쓴다. 또 인체에 해가 되는 화학성 재료 대신 무해한 소재를 선호하며 재료의 생산과 운송에 에너지가 덜 들어야 한다. 되도록 건축 현장과 가까운 소재를 쓰자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이다. 재활용할 수 있거나 폐기물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재료가 좋다.

에너지의 순환성

화석연료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대안에너지 장치, 미기후를 이용한 냉난방 설계기법 등을 활용한다. 에너지를 덜 쓰기 위해 단열 조습에도 신경을 쓴다. 태양광이나 태양열, 풍력, 조력 파력 등을 활용한 대체 에너지가 있으며 지열을 이용한 보조 에너지 채집과 동식물을 이용한 재활용 에너지, 물의 낙차를 이용한 소수력 발전 설비 등을 쓴다.

녹지 및 공지의 활용

주변의 생태환경과 연결되어야 한다. 집안의 녹지와 조경은 환경과 연결시켜 꾸미며 집 주변에는 소생태계(Biotop)를 설계해 집에서 나오는 오수가 무해한 상태로 외부로 배출되게 만들어야 한다. 기후나 지형지세 등의 자연조건을 적절하게 활용하도록 녹지 및 공지를 열린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물 공기 토양의 순환과 활용

물 사용은 자연계의 순환체계와 맞물리도록 설계한다. 빗물은 땅으로 스며들게 하고 빗물과 오수를 분리시켜 재사용할 수 있는 우수저장시설, 수질정화후 재활용시설 등을 설치한다. 대기와 토양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재료와 시공방법을 선택하며 내외부에 식물을 심어 자연적으로 산소가 생산되게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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