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 되자 노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아들과 손자를 위해 제과점에 들러 맛있는 케이크도 사고 장난감도 새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약속된 시간에 나타난 아들과 손자는 낯 모르는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아버지'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며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계약된 시간이 되어 헤어질 때는 약속된 요금을 내면서도 "차 조심하라" 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10여년 전 일본 잡지에서 읽은 혼자 사는 노인의 가족노릇 아르바이트 기사 내용이다.■ 혼자 사는 일본 노인들은 이제 돈을 주고 가짜 아들 손자를 보기도 어렵게 될지 모른다. 시오카와 마사주로(鹽川正十郞) 재무장관은 지난 6일 고령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필리핀에 '노인수출'을 타진했다고 한다.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그는 "필리핀의 양로시설이 일본 노인들을 받아주면 일본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고, 필리핀은 실업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테니 일석이조 아니냐"고 했다. 노인문제가 얼마나 다급하면 그런 제안을 했을까 싶다.
■ 그것이 일본만의 문제일까. 최근 십수년 동안 한국에도 독거노인이 크게 늘었다. 1985년 당시 65세 이상 노인은 175만여명, 이 가운데 혼자 사는 사람은 6.6%였다. 2000년에는 노인인구가 337만여명으로 배가 되었고, 이중 16.1%는 혼자 살고 있다. 지금은 생산가능 인구 8.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꼴이지만 2020년에는 4.7명, 2030년에는 2.8명당 1명씩 부양해야 한다. 노인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무의탁 노인도 같은 비율로 늘지만, 노동력 인구(15∼65세)는 현재 22.8%에서 2030년 14.8%로 줄어들게 된다.
■ 노인인구 비중은 그리스(17.6%) 일본(17.2%) 벨기에(17.0%) 순, 노령화 지수는 이탈리아(126.5%) 일본(116.7%) 그리스(116.5%) 순이다. 한국은 노인 비중이 7%를 넘어섰을 뿐이지만 증가속도가 빨라 2050년이면 노령화 지수 세계 2위인 327.6%를 기록하게 된다. 정부는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고 보험료는 올리는 방식으로 연금문제를 해결하겠다 하고, 양대 노총은 극력저지 방침으로 맞서고 있다. 돈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 데서 오는 연금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그 뿐이다. 수출을 논하게 되기 전에 시한폭탄처럼 다가오는 노인문제 해결에 국론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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