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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75>바이마르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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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75>바이마르 헌법

입력
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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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8월11일 바이마르 헌법이 공포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바이마르는 이 헌법을 제정한 제헌국민회의가 소집된 튀링겐주(州)의 도시다. 괴테와 실러, 니체와 리스트 등 예술가·철학자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이 도시의 이름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태어난 독일의 헌법 이름이자 나라 이름이 된 것이다.바이마르 헌법은 당대의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무엇보다도 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해 프랑스나 영국 같은 '민주주의의 선진국들'을 부끄럽게 했다. 바이마르 헌법은 또 고전적인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삼으면서도, 재산권 행사는 공공 복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 국민은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의 보장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 뒤의 민주주의적 헌법들이 본받게 된 사회권적 기본권 조항을 처음으로 헌법에 넣어 '사회국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내각이 비례대표 의회에 책임을 지기는 했지만, 7년 임기의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이 대통령이 일종의 '대리황제'로서 총리 임면권, 의회 해산권 등 상당한 권한을 지녀,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 체제는 의원내각제라기보다 이원집정부제라고 할 수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건축의 발터 그로피우스, 음악의 아르놀트 쇤베르크, 소설의 토마스 만과 하인리히 만, 시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희곡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미술의 '푸른 기사파'와 '다리파' 등이 활약하며 문화적 약동을 뽐냈지만, 가혹한 강화 조약과 불안정한 경제 상황 때문에 국내 정치는 계속 불안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우파 극단주의자들의 협공에 시달리며 14년을 보낸 뒤, 합헌적으로 총리가 된 아돌프 히틀러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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