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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본 질병]<4>심한 자책·복수심 자살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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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본 질병]<4>심한 자책·복수심 자살불러

입력
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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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감히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 고민과 갈등이 마음을 먹어 들어갔을 것이다.남은 사람들도 힘들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순식간에 파괴시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행위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 "아, 그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말릴 수 있었어야 하는데…"라고. 죄책감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네 탓이야, 네가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야"라고. 질문은 이어진다. "왜 죽었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자살은 문자 그대로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다. 남을 죽이면 인륜과 도덕, 그리고 법에 어긋나지만 자신을 죽이는 것은 당연히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죽은 사람을 두고 도덕적 비난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차마 하기 어려운 자살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겉으로 보면 경제적 문제, 실연, 야단 맞음 등등 이유가 다양하지만 좀더 깊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살이라고 하는 행위에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은 무의식적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중에 큰 것이 자신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정인이나 세상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과 분노가 방향을 돌려 자신에게 향하면서 "내가 죽으면 네가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 받겠지"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전환되면 자살 확률이 높아진다. 지나친 책임감이나 실수에 대한 과도한 자책도 자살로 이어지는 수가 흔하다.

뻔뻔스럽더라도 남을 끝까지 드세게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좀처럼 자살을 하지 않는다. 때를 써서라도 모든 것이 남의 잘못이라고 우길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남는다. 남을 비난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자신을 비난하는 쪽으로 옮겨가면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무조건 '내 탓이야'라고 느끼는 것이 마냥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면 남도 적당히 미워하고 자신의 잘못도 다소 합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단숨에 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서서히 죽여가는 방법도 있다. 담배 피우기, 술 많이 마시기, 필로폰이나 엑스타시 하기, 충동적 성행위와 같이 위험한 지경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행동의 이면에는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서서히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숨어 있다.

갑자기 죽어버리든 서서히 자살하든지 간에 남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충격에 쌓이지만 일상의 혼잡함 속에서 죽어간 사람을 쉽게 잊는다. 죽은 사람의 무의식적 소망과 달리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복하기 위해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그 허망함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은 자살로 움직일 수 없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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