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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뛰어넘는 선행학습 /"한걸음 앞서려다 두걸음 뒤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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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뛰어넘는 선행학습 /"한걸음 앞서려다 두걸음 뒤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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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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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을 막론하고 교육과정을 미리 배우는 '선행학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선행학습이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은 미리 배우고 학교에서 다시 반복 학습하면 학교 공부나 시험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으면 남보다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학원의 마케팅 전략때문.그러나 학부모들의 기대와는 달리 선행학습으로 인한 폐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학원의 선행학습 수업은 동일한 내용을 여러 번 배우는 반복학습이며, 문제풀이 위주. 이 같은 학습에서 오는 부작용은 아주 심각하다.

예를 들어 응용 문제를 내면 그 문제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만 풀려고 한다. 학원에서 원리나 개념을 단계별로 가르치지 않고 문제풀이에만 치중하다 보니 학생들도 과정에 충실하지 않고 결과의 정답 여부에만 관심을 둔다.

학원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응용 문제를 기피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선행학습을 받는 학생들이 대부분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거나 수업내용에 흥미를 잃는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 연구위원은 "중·고생 2,155명을 대상으로 4개월 이상 선행학습을 한 학생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중위권과 하위권 학생의 경우 학원에서 교과 과정을 미리 배워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물어보면 실제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예습만 하기 때문에 예습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더구나 학원에서 배운 내용 중에서 상당 부분이 잘못된 것인데, 잘못된 개념이 학생들에게 주입되면 고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선행교육은 나이가 어린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전문가인 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서유현 교수는 "뇌는 한꺼번에 같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부위별로 발달한다"며 "뇌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과도한 선행교육을 시키면 뇌가 손상된다"고 말했다.

전선이 엉성하거나 가늘게 연결돼 있는 경우 과도한 전류를 흘려 보내면 과부하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행교육 때문에 뇌가 손상되면서 구토, 발작 등이 나타나는 과잉학습장애증후군을 앓을 수 있다.

또한 선행교육은 뇌의 감정과 본능을 담당하는 기능은 억눌려서 정서가 메마르게 된다. 최근 늘어가는 청소년 비행은 뇌가 비정상적 통로를 통해 감정적 충족감을 얻으려는 것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도 있다

2000년 미국 UCLA의 폴 톰슨 연구팀은 대뇌의 발달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언어기능과 연상사고를 담당하는 측두엽 영역인 '칼로좀이스무스'의 성장률을 관찰했는데 4∼6세 아동은 0∼20%에 불과했지만 만 7세가 되면 85%이상으로 최고의 성장률을 보였다. 서 교수는 "이런 결과에서 볼 때 유아들의 한글교육은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이 발달하는 7세 이후에 한글 학습을 본격적으로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영어교육 역시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 발달에 맞춰 보면 교육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

서 교수는 "너무 일찍 마구잡이로 시키는 것보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본격적으로 외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선행교육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특히 대학교에서 실시하는 각종 경시대회 수준을 나이에 맞게 출제해 '동행 학습'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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