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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60·끝) 道와 함께 늙어가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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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60·끝) 道와 함께 늙어가는 세월

입력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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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와 전선이 마구 뒤엉켜 있는 클럽 우드스탁을 찬찬히 훑어 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뜻밖일 지도 모를 글귀가 벽에 단정하게 붙어져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완전한 도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장자), '최상의 덕은 물과 같다'(노자).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진리와 같은 말씀이다.이제 나는 어엿한 할아버지다. 지난 3월 대철에게 아들이 생긴 것이다. 편히 살 팔자는 못 되는지 늘그막까지 이 일 저 일 벌여 놓아, 제대로 볼 틈을 내기 힘들다. 지금 계획중인 어린이 노래는 첫 손자(동주) 에게 주는 나의 첫 선물이 되리라.

내 생애 최초의 록 동요다. 대표곡의 서라운드 녹음 등 DVD 작업이 끝나면 올 하반기 중으로 본격 작업에 들어 갈 계획이다. 이번에는 모처럼 컴컴한 우드스탁을 벗어나, 1980년대 초반에 그룹 세 나그네를 이끌고 떠돌던 시절처럼 차를 몰고 다니며 곡을 쓸 생각이다.

기타 연습은 끊이지 않고 한다. 그러나 특정 곡이 아니라, 1주일에 한 번꼴로 치고 싶은 대로 친다. 블루스니, 록이니, 재즈니 하는 식으로 장르도 없다. 그냥 물 흘러 가듯, 내 식의 5음계 선율을 3·3 주법에 따라 연주해 가는 것이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손을 움직이는 게 전부다. 기타와 함께 컴퓨터 작업도 꼬박꼬박 해 나가고 있다. 지금 내 목소리는 예전처럼 힘은 없지만, 늙은대로 맛이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어찌 생각해 보면 연예판처럼 허망한 동네도 없다. 숨가쁜 일정 속에서 연예인들이 가질 수 있는 만남이란 분장실에서 잠깐씩 스치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 경우가 배호다.

1970년대 초 연습장에서 마주쳤던 그는 병색이라곤 하나도 없던 드러머였다. 드럼을 치며 미발표곡을 부르고 있던 그에게 나는 "가수로 나서라"며 진심 어린 박수를 쳐 줬고 얼마 후 그는 '돌아가는 삼각지' 히트로 답했다. 그 후 무대 뒤에서 몇 번 의례적 인사가 있었나 싶더니 돌아 오지 못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나는 내 본능(또는 감각성)에 의지해 지금껏 그 강에서 헤엄쳐 왔다. 흐르는 물 같은 게 인생이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썩는다. 노자는 물이 근원이라며 얼마나 많은 비유를 했던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지나간 시간의 고통, 역경, 즐거움 등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은 결국 내게 필요했다. 장자는 말하기를 내세란 데는 기가 막히게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상사란 거기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한때 환각제에 의지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인간의 능력 으로도 극락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일 때가 온 것 같다. 대마초 사건 이후 10여년 동안은 방배동 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을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사의 때를 떨쳐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 없이도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고난, 예기치 않게 불거지는 일 등은 결국 득도의 과정이다. 나에게 닥쳤던 모든 것들은 나에게 필요했던 과정이었다. 그것들을 버텨내면서 나는 인간사의 이러저러 한 싸움을 현명하게 이기고 처리해 나가는 능력을 터득했다고 믿는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다 보면 상수(上手)가 되리라. 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견뎌냄'이다. 노장 사상에 의한 이런 깨우침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라이브 록 클럽 우드스탁이다. 노장의 말씀 바로 옆 액자에 걸려 있는 문장은 지금 이곳에 대해 새삼 깨우쳐 준다. '실험적 사운드로 실력 이상의 것을 하려는 것은 진기함을 자랑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곧 사라진다.' 영국의 실험적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의 말이다. 둘째 윤철이 좋아하는 말인데, 깊이 있게 와 닿아 노장(老莊)의 말씀과 나란히 걸어 두었다.

이제부터 진짜 내삶이 시작된다는 믿음이다. 지금까지 읽어 주신 독자 제위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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