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의 사연이나 과거 화제가 된 사건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여 주는 재연 프로그램이 표절이나 제보 내용 왜곡 등으로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최근 지상파 TV에서는 재연 프로그램이 10여 개나 돼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재연 프로그램의 인기는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재로 삼아 친근감을 주는 데다 재연 전문 배우 특유의 코믹 연기가 색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방송사로서도 제작비를 대폭 절감하면서 높은 시청률까지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러나 유사 프로그램의 범람과 지나친 흥미 위주의 제작 관행으로 표절 의혹과 과장 논란 등이 잇따르고 있다.
13일 방송된 KBS2 '결혼이야기' 표절 논란이 대표적이다. 악연으로 만난 남녀가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을 그린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편이 방송된 직후 게시판에는 지난해 1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11부작 미니시리즈 '사랑의 힘'의 표절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한 회사에 스카우트된 여주인공이 같은 이름 때문에 착오가 생긴 것을 알고도 막무가내로 회사에 눌러앉고, 남자 주인공이 사귀는 거래처 회장 딸이 여주인공과 친구 사이라는 점 등의 상황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거의 그대로라는 지적이었다. 확인 결과, 이 사연은 김 모씨가 한 후배가 자신의 이야기에 '사랑의 힘' 내용을 섞어 말한 것을 사실로 믿고 제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6일 방송한 거액의 보험금 사연도 이미 다른 방송사 재연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내용과 비슷해 빈축을 샀다. 특히 3편의 이야기를 소개한 뒤 가짜를 알아맞히는 이 프로의 '진실 혹은 거짓' 코너가 지난달부터 케이블 채널 수퍼액션에서 방송되고 있는 미국 폭스TV의 '신비! 텔레비안 나이트'의 구성과 내용을 본떴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이야기'를 제작한 김형일 PD는 "의도적으로 베낀 것은 아니지만 제보 내용을 철저히 검증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며 "제보 채택과 검증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제보 내용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거나 왜곡한 경우도 적지 않다.
KBS2 '기적체험! 구사일생'은 2월 방송한 '대낮의 폭탄테러' 편에서 주인공을 고스톱 치고 술 마시느라 월급을 날린 가정 파탄자로 그렸다가 제보자의 항의를 받고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13일 방송된 동굴 조난사고의 제보자 정 모씨도 "동굴탐험 활동, 사고 동기나 사고 후 대처 등이 사실과 달리 그려져 동굴탐험대 동료들로부터 욕을 먹었다"며 정정 방송을 요청했다.
제작진은 제보된 사연을 극화하는 과정에서 방송 특성에 맞게 내용 일부를 수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연 프로그램의 묘미는 우리 이웃의 실화를 소개한다는 점에 있는 만큼 시청률을 의식한 지나친 과장, 왜곡은 삼가야 한다는 소리가 크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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