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사무장, 지구당 사무국장 등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왔던 최도술(崔導術·56)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이제 '청와대 살림'을 챙기고 있다.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인 그는 "대통령 곁을 지켜온 20여년 동안 늘 궂은 일만 해 서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랫동안 모실 수 있어서 좋았고 주위에서 그만큼 인정해주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총선 출마 의향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며 "전혀 없다"고 확실히 선을 긋는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나섰다가 낙선한 노 대통령이 지구당을 물려주겠다고 했을 때도 최 비서관은 손사래를 쳤다.
노 대통령은 최근 최 비서관의 안내를 받으며 직원 식당 등을 돌아볼 때 "총무 파트가 여러 부서를 지원해야 하는 자리라 힘이 많이 들겠다"면서 "수석자리인데 1급이라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노 대통령은 또다른 자리에서는 "조심해서 일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월권하거나 실세 행세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한편으론 격려하고 한편으론 경각심을 일깨운 것이다.
부산에서 선거 조직을 관리해온 최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부산 인맥을 두루 꿰고 있고 인사 관련 부탁도 수없이 받고 있지만 "한번도 추천한 적 없고 앞으로도 전혀 개입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부산 인맥으로는 최연장자이지만 학생운동권 출신이 아니어서 '대선배 대접'은 못 받는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386 측근의 활약에 대해 "젊은 사람이 더 일을 많이 하고 우리는 뒤에서 도와주는 모양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1965년 부산상고 2학년 때 독서실 총무를 하면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독서실 총무가 청와대 총무가 된 셈이다. 당시 3학년이던 노 대통령이 최 비서관과 시비를 벌이다 최 비서관이 뺨을 때리자 순간적으로 책상 위에 올라가 후배의 횡포를 성토하는 일장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때 최 비서관은 그 연설이 하도 유장하고 논리정연해서 '변호사나 해먹으라'고 쏘아붙였고 노 대통령은 결국 변호사가 됐다.
그는 부산상고 졸업 후 취직도 해보고 개인사업에도 손댔었다. 1984년 사업에 실패, 부도 낼 각오를 하고 변론을 부탁하러 갔을 때 노 대통령은 "전과자가 되면 재기하기 어려우니 벌면서 갚으라"며 1,000만원을 마련해 주었다. 사양하다가 변호사 사무장 1년치 월급으로 쳐 받아쓴 것이 20년에 가까운 '집사 인생'의 시작이 됐다. 아직 서울에 집을 마련하지 못한 최 비서관은 청와대 내에 방 하나를 얻어 쓰면서 속옷이나 양말을 직접 세탁하며 살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사진 이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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