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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소비자 천국, 생산자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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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소비자 천국, 생산자 지옥

입력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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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에 가면 광복 전후에 문을 연 유서깊은 곰탕집이 있다. 늘 손님으로 넘쳐나는 이 가게는 반세기 넘도록 한 자리에서 마당에 지붕만 올린 채 꾀죄죄한 탁자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 입구에서 돈부터 내고 식권을 받아서 자리에 앉으면 빛바랜 백색 가운을 입은 남성 접대원이 곰탕과 깍두기를 갖다 준다. 손님이 한참 넘칠 때는 마지막 숟가락을 놓자마자 그릇을 잽싸게 치워간다. 물은? 나가는 길에 각자 따라 마신다. 저녁 땐 장사를 안 한다. 끓여놓은 곰탕 떨어지면 끝이다. '곰탕만이 진실이며 모든 서비스는 껍데기다'라는 화끈한 철학을 주인은 갖고 있는 듯 하다.얼마 전 들른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초기화면에는 단 한 개의 상품도 진열되지 않았다. 대신 제프 베조스 회장 명의로 고객에게 감사하는 편지 한 통이 올라 있었다. 권위 있는 '미국고객 만족지수'에서 아마존이 작년에 84점으로 1등한 데 이어 올해도 88점으로 1등이라는 것이다. 84점만 해도 일찍이 없었던 사상최고 점수였는데, 1년 만에 또 다시 기록을 깼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고객감동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신경제의 상징이다. 자기 기록을 자기가 또 깨뜨린 데 이어 내년에도 세계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다. 서비스는 극한의 완성에 이르러야 하며, 돈은 많이 벌수록 좋다, 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화끈한 철학을 아마존 구성원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신경제의 구성원들은 노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값이 싸거나 서비스가 좋으면 손끝 한번 까딱해서 옮겨가는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서비스는 감동으로, 가격은 최저로 내닫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도 이익을 내는 기업은 보통 독한 기업이 아니다. 독하게 경쟁하고 지독하게 합리화한다. 더 오래, 더 훌륭하게 일해야 회사에서 버틸 수 있다. 나이 들었다고 봐주지도 않아 정년은 10년이나 빨라졌다. 마흔 다섯 이후에 모두들 무얼 해먹고 살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소비자로서 천국에 살려는 우리의 요구가 생산자로서는 스스로를 지옥에 살게 한다. 자업자득이므로 누구를 원망할 일도 못 된다. 소비를 줄이자는 근본주의는 현세에 득세할 전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생산을 효율적으로 해서 생산자의 부담을 경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더욱 열심히 더 더욱 지혜롭게 일할 수밖에….

조 유 식 알라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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