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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메이커]정종덕 건국대축구 명예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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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메이커]정종덕 건국대축구 명예감독

입력
200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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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카페트 위를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갈길을 뛰어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팔자가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지만 자갈길을 가는 사람은 평생을 그러는 게 당연시 되고, 영화(榮華)는 항상 카페트 위의 몇몇 사람이 나누어 갖는 현실에는 가끔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한반도를 광풍속에 몰아 넣었던 지난해 월드컵 축구. 예선전 폴란드와의 첫 경기서 1, 2호골을 넣어 한국팀 4강신화의 시동을 건 황선홍과 유상철은 우연치 않게 건국대 선후배였다. 대학시절 정종덕(鄭鍾德 ·60)이라는 감독아래서 기량을 닦아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다.

월드컵팀에는 이밖에도 이영표와 현영민까지 정감독의 제자가 모두 4명. 정감독은 제자들이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했다는데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월드컵후 건국대의 종신 명예감독에 위촉되는 영광을 안으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함을 금하지 못했다. 이렇게 세계 강호들을 혼쭐내는 선수들을 만들면서도 그동안 국가대표 감독은 커녕 후보명단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종덕이라는 이름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어도 경력과 제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윤상철 고정운 유승관 이상윤 공문배 유영록 권우진 황선홍 유상철 신병호 이영표 노규영 현영민 등이 그가 건국대서 만들어 내보낸 국가대표급 스타.

그의 업적이 더욱 의미있는 것은 스카우트 싸움에서 당할 수 없는 연세 고려 한양대가 고교 최고스타를 싹쓸이한 후 남은 선수들을 모아 이루어 낸 것이기 때문.

그래서 "대표팀 감독을 시험으로 뽑는다면 지금이라도 도전해 보겠소. 이리저리 자기들끼리 돌려 먹고, 그래서 안되니까 외국인 감독 데려다 쓰는 것 아닙니까"라는 분노가 수긍이 간다.

그는 특정 몇 학교 출신이거나 높은 곳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국가대표 감독은 절대 될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단언한다.

경신고 경희대 선수를 거친 정감독은 체육교사를 하다가 1968년 경신중 코치로 축구 지도자를 시작했다. 선수생활은 165㎝의 작은 키에 고등학교 들어가 했으니 그리 잘하지 못했지만 지도자 생활은 출발부터 화려했다. 69년 경성고 창단감독을 맡고 안양공고와 대구 계성고 감독을 거쳐 80년부터 21년간 건국대를 이끌면서 누구보다 많은 성적을 냈다. 안양공고에서는 74년 6관왕을 포함 5년간 11회 우승, 계성고에서는 75년 3관왕.

건국대는 부임 다음해 81년 종합선수권부터 98년 춘계연맹전까지 9회 우승.

그중 국민대 대우 포철 고려대를 내리 꺾고 우승한 81종합선수권의 4경기는 평생 잊지 못한다. "기적같은 승리의 연속이었죠. 당시 결승은 1-1 무승부로 끝나 재경기까지 해 2-1로 가까스로 이겼는데 고려대는 국가대표가 9명이었어요. 모두 고려대 벤치에 앉은 선수가 건국대 주전들보다 낫다고 할 때이니 난리가 났지요" "다른 것 없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력을 갖고 경기하라고 했죠"

팀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절대 책임있는 행동만 하라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반칙도 쓸 데 없는 것은 삼가고 반드시 팀에 유리한 것만 하는 겁니다. 바로 월드컵때 한국팀의 경기가 그랬지요. 프랑스의 앙리도 아무 소득없는 반칙을 하고 쫓겨나 팀에 피해를 줬으나 한국선수는 한명도 퇴장이 없었잖습니까. 평소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그는 첫째 부지런하다. 지방의 중학교 경기까지 다니면서 남의 눈에 안 띄는 재목감을 점찍었다. 어차피 큰 경기에서 빛을 내는 선수는 차지가 안 오니 장래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공격수 위주가 됐다. "수비선수는 누구의 눈에나 잘 띕니다. 그러나 공격수는 한 경기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시간이 길어야 3분밖에 안 되죠. 5경기는 봐야 선수를 평가할 수 있으므로 인내심이 없으면 공격수는 놓치기 쉬운 겁니다"

고정운 유승관을 잡은 것은 이런 부지런함에 대한 보상이었다. 고정운 유승관은 이리고 2학년때 3관왕을 했으나 3학년때는 선배 8명이 졸업하면서 예선탈락해 주목하는 대학이 없었다. 황선홍도 용문고 시절 팀이 성적을 못내 정감독이 행운을 안았다.

그는 공격수 랭킹 1위를 못 뽑는 대신 그의 천적을 선발해 수비를 맡기곤 한다. 수비는 체격과 힘이 좋은 선수를 뽑아 가르치면 된다.

유상철은 힘과 헤딩력이 좋으나 발이 안 빠른 선수. 고교때 센터포드였던 것을 대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해 1순위 선수로 키웠다.

고교때 공격수를 뽑아 수비로 쓰면 공격전환 능력이 좋아 효과를 많이 본다는게 그의 지론.

정감독은 지도자의 첫째 조건으로 24시간 선수를 통제할 수 있는 생활을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생활이 단순해야 한다. 골프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해봤고 취미는 낚시 하나이다.

선수에게는 노력과 근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1류가 아니다. 그래서 남보다 두배 고생해야 한다" 신입생에게는 2년의 기간을 주고 못따라 오면 포기한다.

담배 피우는 선수에게는 운동을 그만 두거나, 숙소 생활을 못 하거나, 벌금 100만원을 내도록 했다. 요즘에는 체벌보다 벌금을 무서워하는데다 선수가 이 큰 돈을 마련하려면 부모도 알아 같이 흡연을 말리게 되니 효과적이다. 실제 3명이 벌금을 냈다.

또 선수들에게는 △400m를 52∼56초에 뛸 것 △입학후 2년내에 12분동안 400m 트랙을 8바퀴 이상 돌 수 있는 스피드를 갖출 것 △3단 줄넘기를 100회 이상 계속해 고무공과 같은 탄력을 만들 것을 과제로 내주고 있다. 주말 외출도 포기하고 노력해 달성한 선수가 고정운 이상윤 이영표 현영민 등이다.

윤상철 고정운 황선홍 이상윤 유상철등 건국대 출신중에 30세가 훨씬 넘어서도 뛴 선수가 많은 것은 이렇듯 대학시절부터 근성과 자기관리가 철저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간에 프로팀 감독제의가 두 번 있었으나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고 한다. "당연히 성적이 바닥인 팀에서 오라는데 당장 내 배를 채우겠다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드래프트제도에서는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를 뽑을 수 없어 팀 개혁이 안 된다. 전술로는 한계가 있다"는게 그의 변이다.

프로감독은 고등학교 팀을 4∼5년 맡아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춘기의 까다로운 선수를 다룬 경험이 있어야 팀을 잘 이끌고, 여러번 져 봐야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것. 그래서 유명선수 출신들이 곧바로 프로팀 지도자로 가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2000년말 건국대를 퇴직하고 SBS 스포츠채널의 해설을 맡고 있는 그는 고향 가평에서 유소년축구캠프를 준비중이다.

대학선수는 2년이 지나야 성패가 나지만 어린 선수는 3개월마다 변화가 나타나 가르치는 재미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프로필

출생=1943년 경기도 가평

학력=경신고-경희대

경력=경신중 코치(68년) 경성고 창단감독(69년) 안양공고 감독(71년)대구계성고 감독(76년) 건국대감독(80∼2000년) 88아시아선수권대회 예선전 감독(통과) 92 하계유니버시아드 감독(준우승)

가족=이하향씨와 1남1녀

취미=낚시

■ 신문선이 본 정종덕 감독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아 축구계 동료들에게 '마오쩌둥', 선수들에게는 '칼날'로 불리는 정종덕 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거기에 맞는 선수를 골라 스타로 키우는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 2류선수 밖에 데려올 수 없는 악조건이지만 가능성 있는 선수를 찾아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훈련을 통해 1류선수와 1류팀을 만든 그의 능력은 감탄할 만 하다.

국내 축구계에 그와 같은 지도력과 열성이 높이 평가받는 문화가 조성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한 정감독은 피해자이다. 히딩크 감독이나 이탈리아의 사치,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 모두가 선수시절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적 명장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축구도 이름으로 감독하는 구태를 벗어나 성적으로 지도자를 평가해야 발전이 있을 것이다.

/사진=최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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