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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양평 규석광산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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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양평 규석광산 갈등

입력
200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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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수입3리 고동산(해발 600m) 입구. 표고버섯 하우스를 수리하던 이종표(50)씨가 누런 속살을 드러낸 산을 휙 보더니 한마디 내뱉었다. "작년엔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규석광산 물 건너 간줄 알았죠. 근데 웬걸, 공사하는 거 봐요. 눈뜨고 코 베인 꼴이에요."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버섯용 목재를 뒤적이다 말고 "버섯이야 붙겠지만 광산에서 나오는 분진이 달라붙으면 누가 사먹기나 하겠어요" 하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난해 서종면 일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규석광산이 4일 밤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2,000만 수도권 인구의 식수원 오염과 분진 소음 등을 내세워 8개월 동안 반대투쟁에 나섰던 주민들은 "힘만 빼고 빚만 늘었다"고 한탄했다."힘만 빼고 빚만 늘었다"

산 입구에 마련된 반대투쟁본부 컨테이너는 문이 잠긴 채 텅 비어 있다. 주민들이 광산 공사를 막기 위해 교대로 당번을 섰던 곳이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없다. 굴삭기 등 공사장비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세웠던 장승과 플래카드도 한쪽에 널브러져 있다.

주민대책위 위원장을 맡았던 노원봉씨가 뒤늦게 나타나 "할만큼 했으니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했다.

산림형질 변경 허가를 따낸 (주)대사개발이 광산 진입로 공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23일. 수입1·2·3리, 노문리, 명달리 등 5개리 주민 1,500여명은 양평규석광산반대주민대책위를 꾸려 공사 다음날부터 산 입구를 틀어막고 실력저지에 들어갔다. 5월에는 북한강 수질오염 등을 우려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공동대책위까지 구성됐다.

"환경부 무슨 국장, 경기도지사 등 안 만나본 사람이 없고 집회도 징그럽게 했어요. 생업도 팽개치고 광산 반대에만 매달렸다니까요." 마침내 지난해 9월 환경부로부터 한강수계기금을 활용해 광산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버섯이나 따고 농사나 짓는 농사꾼들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그만한 성과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주민들은 그 승리에 취해 투쟁을 접었다. 광산측이 주민 33명을 상대로 낸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등 현실적인 압박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부지 매입 약속은 반년째 감감무소식. 그리고 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주민들은 "정권이 바뀌고 실무자들도 물갈이 됐는데 이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백승배(47·수입1리)씨는 "(정부의) 약속만 없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요. 소송에서 지면 광산이 문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 망하게 될 것"이라고 속상해 했다. "형사고발까지 당해 200여 만원의 벌금까지 물어줘야 할 판이에요. 배운 건 없지만 환경 보호한다고 나섰는데 죄인 취급이라니… 저도 마을을 뜰 생각입니다."

환경부와 한강유역관리청 관계자는 모두 "아직 상황이 끝난 게 아니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부지 매입만 가능한 한강수계기금으로는 광업권, 소요비용 등 개발회사가 요구하는 재산 손실 보상이 어려워 경기도 등과 함께 법률검토를 하고 있지만 허가가 난 광산 공사를 무턱대고 중단시킬 수도 없다는 설명이다.

슬그머니 재개된 광산 개발 현장

북한강에서 고작 2㎞ 떨어져 수질보전 특별대책 제1권역에 속하는 고동산은 볼품없이 변해 있었다. 북한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잣나무와 낙엽송 등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주말 가족산행지로 유명했던 고동산은 굴삭기가 한 삽, 한 삽 몸을 도려낼 때마다 옛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폭 8∼10m의 진입로는 벌써 산중턱까지 이어져 있었다. 부지 매입이 성사되더라도 복구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한 인부는 "1년 동안 한 게 고작 1㎞ 남짓 길 뚫은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아직 포장이 안돼 질퍽질퍽한 진입로를 따라 10분 넘게 오르자 규석광산 공사 현장이 나왔다. 20m 깊이로 파내려 간 선광장(選鑛場)은 거대한 폭격을 맞은 듯 했다. "채광 소음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공사 관계자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을 성토했다. "올 2월 말까지 광산시설을 갖추고 채광 생산보고를 하지 않으면 채광권이 취소되기 때문에 법원에 연기신청을 해둔 상태"라며 "또다시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하면 허가 취소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죽어도 광산은 안 된다"

정부의 약속은 불투명하고, 공사도 재개되고, 주민대책위도 잠잠하지만 서종면 주민들은 하나같이 "규석광산만은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논농사를 짓는 윤모(47)씨는 "물 오염 안 시키려고 제초제는 커녕 비료도 유기퇴비만 썼는데 규석광산이 말이 되느냐"며 "분진과 소음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생태산촌 마을로 지정된 명달리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눈치다. 김주강(34) 이장은 "승용차도 마주 지나기 힘든 좁은 길에 거대한 덤프트럭이 밀고 들어오면 누가 마을을 찾겠느냐"며 "생태보전 한다고 50억이나 쏟아 붓더니 10분 거리에 규석 광산을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평했다.

주민들과 규석광산 반대 투쟁에 나선 환경 단체들은 주민피해뿐 아니라 북한강의 수질 오염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 환경정의시민연대 김홍철 팀장은 "토사유출뿐 아니라 규석 채광 과정에서 노출된 암반에서 흘러나온 중금속이 인근 수입천을 따라 북한강으로 흘러 들어가, 그 물을 마시게 되면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지난달 양평군이 규석광산 개발을 위법하게 허가했다며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해놓은 상태다.

산은 침묵을 지킨 채 죽어가고 있다. "올라가 보기도 속상하다"는 한 주민이 진입로가 뚫린 산너머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정부가 약속을 안 지키면, 이왕 거덜 난 거 우리가 다시 나서야지요. 죽어도 광산은 안 되니까요."

/양평=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최종욱기자

개발사 73억 보상요구 정부 반년째 "검토중"

고동산에 규석광산을 개발하고 있는 (주)대사개발은 1983년 272㏊의 면적에 광업권을 취득했다. 본격적으로 광산 개발에 나선 것은 97년 채광사업 재개 신고를 내면서부터. 그러나 98년 산림형질변경 허가신청이 주민들의 반대로 반려되자 양평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월 광산 부지 1만3,000여㎡에 대한 산림형질변경 허가를 따냈고 3월부터 진입로 조성 등 공사에 들어갔다.

지역 주민들은 대책위까지 구성해 공사를 온몸으로 막았고 환경단체 등도 동참해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규석광산 개발의 부당성을 여론화했다.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에 차질이 생기자 업체측은 지난해 8월 주민 33명을 상대로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면서 규석광산 문제는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업체와 주민들의 갈등이 확산되자 환경부는 지난해 9월 광산 부지 매입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부와 경기도는 부지 매입 비용과 보상 문제를 놓고 2차례 협의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한강유역관리청 관계자는 "검토는 계속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라며 "부지 매입에 10억 정도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주)대사개발은 지난해 73억원의 보상을 요구한 바 있어 차이가 크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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