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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6> 부모를 내 손으로 땅에 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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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6> 부모를 내 손으로 땅에 묻고

입력
200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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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유일한 낙이었던 아버지는 해소(咳嗽) 병을 얻어 기침이 끊일 날이 없었다. 나는 산이 매우 깊었던 진천군 택곡면의 뒷산에서 매일 나무를 해 와 방에 불을 때고, 배추밭에서 시래기를 걷어 와 죽을 끓였다. 솥에서 한 시간 정도 푹 끓이면 먹을만 했다. 양반을 유독 따지던 그 동네에서는 우리 식구한테 말도 걸지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는 단단히 한이 맺혔다.학교서는 내가 그렇게 살리라고는 꿈도 못 꿨다. 국민학교 3∼5학년 때 전교에서 1, 2등은 도맡아 놓고 했다. 4학년 때는 반장까지 했다. 그러니 자존심이 셌던 내가 내색이라도 했겠는가. 5학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음력 12월 25일 아침에 죽을 끓여 갔더니 냉기만 돌던 방에서 운명한 뒤였다. 몸져 누워 있던 어머니는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알았다. 너무 슬프면 눈물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숨이 턱에 차도록 고모에게 달려 갔으나 고모는 벌써 상황을 짐작했는지 내게 아무 말도 않고 들어가 문을 잠궈 버렸다. 그래서 옆 동네 노인정에 가 도움을 청했다. 생면부지의 노인들은 고맙게도 곡괭이와 삽 등을 챙겨 와 아버지를 가마니로 싸더니 지게에 얹어 산으로 올라갔다. 관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꽁꽁 언 땅을 파는 데 나도 거들었다.

내가 보리 죽을 입에 흘려줘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두 동생 가운데 어린 현자는 끝내 이승과의 끈을 놓았다. 귀한 곡물을 하나도 못 넘기고 뱉기만 해 보다 못한 내가 이빨로 잘게 씹어서 먹여 줬으나 헛일이었다.

남은 두 자식을 데리고 먼 친척집 건넌방에서 미용업으로 근근이 살아 가던 어머니도 1년 뒤 아버지를 따라 갔다. 나는 이번에도 친척집 아저씨와 함께 어머니를 묻었다. 그 날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 장대 같은 소나기가 지나가던 이상한 날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도 진동했다. 어찌 그 날을 잊을까.

소나기를 맞으며 '그래도 하늘은 울어주는구나' 싶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너무 슬픈데 눈물이 안 나왔다. 실은 동생 하나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 동생 수현은 한때 베이시스트로 워커힐 쇼 무대에까지 섰지만 지금은 서울서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다.

더 이상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친척 아저씨한테 동생을 부탁하고 나는 서울로 가기로 했다. 그 아저씨도 나의 처지가 하도 딱했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다음날 버스를 탔다. 믿는 구석이라곤 서울 상도동에 살던 먼 친척이 피난 길에 진천의 우리 집에 잠깐 신세를 졌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상도동에 사는 지 안 사는 지는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상도동에서 가장 큰 3층 짜리 적산(敵産) 가옥에 살고 있었다. 그래본들 무엇하랴.

부모가 기구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알고 있던 그들은 내 행색을 보더니 들어오지도 못 하게 했다. 한참을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소금을 한 사발 퍼 와 마구 뿌려대는 게 아닌가. 한바탕 난리를 친 뒤 그들이 창고로 쓰던 옛날 우리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내 집에서 내가 빌붙어 사는 꼴이었다.

나는 거기서 다른 친척이 하던 해소병 제약 회사의 일꾼으로 취직했다. 약 재료를 빻고 솥에 찐 다음, 봉지에 담아 도매상에 넘기는 일까지 다 한, 요즘 말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였다. 1년간 죽도록 일하다 보니 슬슬 공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우등생 아니었던가. 회사 건너편에는 진천으로 내려가기 전에 다녔던 강남국민학교가 있었다. 다시 그 학교로 가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어떻게든 학교에는 가고 싶어 회사 사장에게 야간중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런데 나는 왜 끔찍했던 적빈(赤貧)의 삶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가. 내 록의 저항성과 공격성이 바로 거기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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