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724>페스탈로치
알림

[오늘]<724>페스탈로치

입력
2003.02.17 00:00
0 0

1827년 2월17일 스위스의 교육자 하인리히 페스탈로치가 81세로 작고했다. 페스탈로치는 교육 이론가였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 교육자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가르치지는 않았으나, 그는 학교와 고아원을 운영하며 교육의 원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페스탈로치는 사회적 불평등의 시정을 교육의 확대로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교육은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선함을 이끌어내는 것이어서 추상적 원리보다 구체적 감각을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자연주의 교육론이나 직관교수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기자의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페스탈로치의 일화 하나가 실려 있었다. 슈탄스라는 스위스 도시의 어느 거리를 한 노인이 걷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때로 허리를 굽혀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주머니에 담았다. 마침 그 길을 순찰하던 경관이 노인의 행동을 수상쩍게 여겨 그를 잡아 세우고 주머니에 넣은 것이 무어냐고 다그쳤다. 별 것 아니라며 난처해 하던 노인은 경관이 강제로 주머니를 뒤지려 하자 할 수 없이 주머니 속에 든 것을 꺼냈다. 유리 조각들이었다. 뭔가 귀한 물건일 것이라고 생각하던 경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주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아이들의 상당수는 맨발이었다. 경관은 노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

그 노인이 페스탈로치였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이웃 나라들로 번지기 시작한 그 즈음 스위스에도 전쟁 고아들이 많이 생겼고, 페스탈로치는 슈탄스에 고아원을 세워 전쟁 고아들을 돌보던 참이었다. 페스탈로치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생을 살았던 듯하다. "모든 일을 남을 위해 일했을 뿐, 그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그의 묘비명이 커다란 과장은 아닐지 모른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