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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정교수 고대사연구서 "고조선 논쟁" 예고/"단군조선은 역사 아닌 신화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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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정교수 고대사연구서 "고조선 논쟁" 예고/"단군조선은 역사 아닌 신화일뿐"

입력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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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로서의 단군과 민족 시조로서의 단군은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재야 사학자들의 단군조선론에 맞서 주류학계의 입장을 대변해 온 신세대 학자 송호정(39) 한국교원대 교수가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푸른역사 발행)를 통해 또 다시 고조선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 동안 '고조선' 부분은 문헌 사료가 거의 없다는 기본적 한계에다 민족주의사관과 식민사관의 대립, 재야 사학자들과 주류학계의 인식차, 민족 정체성을 고양하려는 정권 차원의 의도, 단군을 둘러싼 종교적 해석 등이 뒤섞여 혼돈 상태였다.1998년 국내 최초로 고조선 연구로 박사 학위(서울대)를 받은 후 관련 연구에 매달려 온 송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라며 재야 사학자의 주장과 정부의 눈치보기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런 주장은 재야 사학자들이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고대 문헌을 국수주의적 태도에서 필요한 부분만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한 내용인데도 정부가 관련 내용을 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각종 문헌, 유물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고조선의 등장 시기와 성격을 달리 규정한다.

우선 고조선의 등장 시기와 관련, 기원전 2333년은 삼국유사에 언급된 내용이나 중국 학계에서는 거의 믿지 않는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 시기는 청동기시대(기원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 시기는 선진(先秦)의 문헌인 관자(管子)의 관련 기록에 나오는 기원전 8∼7세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야 사학자들이 고조선 영역을 랴오시(遼西)와 산둥(山東)지역으로까지 확대하면서 그 근거로 비파형 동검 출토를 드는 데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비파형 동검은 랴오시에서 활동하던 산융(山戎) 동호(東胡)족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문화로 봐야 하며, 고조선의 영역은 북방식(탁자식) 고인돌과 팽이형 토기가 집중 출토된 랴오둥(遼東)과 한반도 서북지방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 교수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93년부터 랴오닝(遼寧)성과 지린(吉林)성을 10여 차례 답사했고 지난해 9월에는 2주간 평양과 서북한 지역을 조사했다.

그가 고조선 연구와 함께 관심을 갖는 분야는 부여(夫餘)사. 고조선이 과장 해석된 데 비해 부여는 지나치게 축소 해석됐다고 보고 있다. 그는 "부여야말로 우리 민족의 원류인 예·맥족이 세운 나라이며 삼국과의 연계성도 고조선보다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담은 부여사 연구서도 조만간 낼 예정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송 교수는 "최근 KBS 위성방송 'N세대 특강'에서 이런 내용을 강의한 후 엄청난 비난과 인격적 모독, 협박에 시달렸다"며 우리나라의 미성숙한 토론문화를 아쉬워했다. 또 "제 주장에 대해 중국 학계의 시각에 기울었다거나 이병도(李丙燾)씨 등 식민사관의 아류라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사도 동양사, 나아가 세계사라는 보편적 틀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의미가 사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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