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오래 근무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퇴직한 사람이 들려준 얘기다. "겨울철, 눈이 내리는 날이면 청와대 경내는 무척 부산해진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데도 101경비단(청와대 안팎의 경비를 맡고 있다) 소속 경관들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여기저기서 부지런히 눈을 쓸기 때문이다. 주요 도로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근무하는 본관 주변의 보도까지 눈이 그칠 때까지 계속 눈을 치운다. 그래서 그들은 눈을 결코 반기지 않았다."■ 일반인도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는 것이 당연지사인 만큼 청와대 경내의 눈을 쓰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노태우 대통령은 눈이 오면 부인과 함께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빗자루로 눈을 쓰는 것으로 부족해 아예 물걸레로 산책로를 닦아내 눈 한 송이도 남아 있지 못하게 했다. 대통령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보통사람'을 자처했던 그 대통령은 설경 속의 산책을 즐기기만 했을 뿐 그들의 노고에는 한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지난 3일부터 전국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많은 눈이 내렸다. 곳곳에 길이 얼어붙어 길 가는 시민들이 며칠간 조심조심 빙판길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한 조간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 현대하이츠빌라의 앞길만은 사정이 달랐다고 한다. 노 당선자의 사저 경비를 맡고 있는 경찰관들이 눈 쌓일 틈 없이 밤새 계속 비질을 해서 깨끗이 치워 놓았기 때문이다.
■ 일부에서는 '경찰의 과공(過恭)'이 아니냐고 한다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노 당선자나 가족이 밖에 나섰다가 낙상이라도 하면 큰 일이니, 경찰로서는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지금도 경호원 없이 대중 사우나를 갈 정도로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가, 아침에 자기 집 앞에만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밤새 추위에 떨며 비질을 했던 경찰관의 고생을 떠올렸을까, 그게 무척 궁금하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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