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5년 8월16일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장 드 라브뤼예르가 파리 시테섬의 생크리스토프 교회에서 태어났다.1696년 베르사유에서 몰(歿). 파리 시청 회계감사관의 아들로 태어난 라브뤼예르는 오를레앙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 자격을 얻었지만 개업하지는 않았다.
또 장이라는 같은 이름의 숙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캉시(市)의 징세관 직을 샀으나, 그 자리에도 부임하지 않고 파리에 살면서 독서와 사색과 관찰에 몰두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모랄리스트란 인성(人性)에 대한 성찰을 에세이나 격언이나 단장(斷章)의 형식으로 남긴 문필가들을 가리킨다.
그러니 모랄리스트 라브뤼예르에게 관찰은 일종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라브뤼예르는 왕족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파리 상류 사회 인사들을 꼼꼼히 관찰했고, 그 결과를 ‘사람은 가지가지’라는 책에 담았다.
당대 인물들의 초상과 경구로 이뤄진 이 책은 저자의 생전에만 9판을 찍었을 정도로 커다란 반응을 얻었다.
동시대인들에 대한 암시적이되 날선 풍자는 그 책을 염세주의의 빛깔로 다소 물들이고 있지만, 라브뤼예르의 염세주의는 미래 세대가 당대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배음(背音)으로 깔고 있었다.
‘사람은 가지가지’에 나오는 경구 몇 개. “법관의 의무는 정의를 세우는 것이지만 그들의 직무는 정의를 미루는 것이다.
몇몇 법관들은 의무를 알면서도 직무를 수행한다”, “우리는 늙을 때까지 살기를 바라면서도 늙기를 두려워한다”, “자기 하인이 보기에도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과 우정은 서로를 배척한다”, “사람은 죄 때문이 아니라 나약함이나 자존심 때문에 얼굴을 붉힌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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