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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6)축구 사랑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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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6)축구 사랑 영원히

입력
2002.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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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세계 4강이라는 기적도 이뤄냈다. 8강, 아니 16강에만 들었어도 우리 국민은 기뻐했을 것이다.거스 히딩크 감독과 23명의 태극전사, 그리고 붉은 악마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이번 월드컵을 잊지 못하고 영원한 축구 팬이 될 듯 싶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다. 4강 신화에 대한 흥분, 감독에 대한 찬사, 붉은 악마에 대한 칭찬….

언젠가 이미 한번 겪었던 일이 아닌가. 맞다. 바로 1983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였다.

그때도 한국 대표팀은 4강에 들었고, 박종환(朴鍾煥) 감독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우리 선수들은 붉은 유니폼 덕택에 ‘붉은 악마’라고 불리며 전 세계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역사는 19년 만에 반복됐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그때 미국 LA에서 공연 중이었다. 우루과이와 8강전이 열린 6월10일 LA 동포들은 모두 멕시코로 떠났고, 그 바람에 공연은 완전히 망했다.

그러나 나는 호텔방에서 TV를 보며 박 감독과 어린 선수들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했다.

2-1 극적인 승리로 4강 진출이 확정된 그날 미국 언론은 우리 선수들을 ‘동양의 붉은 악마’ ‘지칠 줄 모르는 이리떼’라고 불렀다.

대표팀이 귀국한 날,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대규모 카 퍼레이드가 열렸다. 하루 전날 귀국한 나는 TV를 통해 자랑스러운 박 감독과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그들의 환한 표정을 통해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봤고, 4강 신화의 주역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감독도 내게 말했다. “이 같은 성원과 열정이면 우리 선수들도 살 맛 나겠다. 최소한 맨땅에서 뛰거나 배고파 못 뛰지는 않겠다”고.

그러나 그 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승리의 주역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고 한국축구를 위한 참을성 있는 응원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대표팀이 84년 LA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박 감독은 역적으로 몰렸고, ‘붉은 악마’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지금, 19년 전 4강 신화의 주인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직장인은 정년이 있고 퇴직금이 있다. 연예인은 50, 60대가 돼도 스타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 선수는 그렇지 않다.

전성기라고 해봐야 고작 10년이다. 국내 선수의 몸값이 1억원을 넘어선 것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과거 최고의 스타 대접을 받았던 선수 중에서 지금 하루 세끼를 걱정해야 하는 원로 체육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우리는 다짐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과 태극전사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오늘의 영광을 있게 한 옛 선수와 지도자들을 지금이나마 제대로 대접하겠다고.

19년 전 4강 신화의 주인공을 한명씩 불러본다. 김풍주 이문영 문원근 유병옥 장 정 최익환 노인우 김판근 김종건 김흥권 강재순 신연호 김종부 최용길 이태형 이기근 이승희 이현철, 그리고 박종환 감독.

그대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축구가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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