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과 그것이 바탕이 된 사이버 세상이 우리의 삶과 문화를 뒤흔들고 있다.디지털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체험과 지식을 얻으면서도,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문화 현상 때문에 충격을 받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김열규(70) 인제대 국문학과 교수가 낸 ‘고독한 호모디지털’(한길사 발행)은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너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냐”를 묻는 인문학적 질의서이다.
저자는 육체, 시각(눈), 언어, 지식이 디지털시대에 접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유전자를 통해 인간이 인간의 육체를 조작하는데 기여한다. 인공 장기가 성행하고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의 탄생도 점쳐진다.
저자는 “인간이 육체의 주인이 됐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사라지고 인간이 기계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됐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이 바탕이 된 망원경은 인간 유전자와 우주 바깥 세상도 볼 수 있게 했다.
“볼 수 없던 것까지도 봄으로써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은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지요.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대한 동경도 줄어듭니다. 보이는 것만 믿게 됩니다.”
언어의 자리는 이미지가 대체하고 있다. 언어라는 고상한 알맹이는 사라지고 포장이 중시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식의 측면에서 본 디지털 문화는 어떤가. “연구소, 대학이 독점하던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지식의 민주화가 이뤄졌지요. 그러나 지식이 대중에 편승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가 바라본 디지털 세상은 이처럼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이다. 하지만 어느 쪽을 강조하든, 디지털 문화가 인간 소외를 심화시킨다는 측면은 부인할 수 없다고.
“인터넷 때문에 이제 세상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혼자 하는 인터넷은 인간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킵니다. 책의 제목에 고독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특히 PC방 문화는 고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주위 사람은 아랑곳 않은 채 모니터를 응시하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청소년의 모습. 그것은 폐쇄된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디지털시대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이지요.”
그렇다면 인간은 디지털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인간 소외 같은 철학적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디지털을 통해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저자는 난해한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거부할 수 없는 문화라 해서, 우리를 그대로 맡기기에는 인간 소외와 고독이라는 문제가 너무 큽니다.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정체성과 능동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화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자가 “호랑이가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이, 디지털세상이 우리를 물고 가더라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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