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를 앞둔 감독의 얼굴은 대개 초췌하다. 막바지 편집에 색 보정, 사운드 믹싱으로 밤샘 작업이 일쑤.그러나 곽경택(36) 감독의 얼굴은 달덩이처럼 훤하다. “도대체 예술적 투혼이 보이지 않는다”고 농담을 건넸더니 입을 벌려 어금니 빠진 자리를 보여준다.
“촬영 내내 이가 아팠는데 진통제 먹고 견뎠더니 마침내 ‘친구’로 받은 개런티의 3분의 1을 써야 할 만큼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강했다.
28일 ‘챔피언’의 개봉을 앞둔 곽 감독은 “예전에는 총각으로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아이를 많이 둔 가장 같은 느낌”이라고 초조함을 표현했다.
‘친구’로 자신이 세운 기록인 관객 820만 명의 신화에 ‘챔피언’으로 다시 도전하는 그를 만났다.
-유명해졌다. 실감하는가.
“누군가 술집 웨이터 이름이 ‘곽경택’이라며 많이 떴다고 하더라. 김득구의 친구 이상봉씨를 만나러 호주에 갔을 때, ‘친구’를 본 호주 동포들이 ‘이 정도로 영화를 만든 걸 보면 감독이 조폭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난동을 부릴 경우 제압하는 방법까지 마련했다고 하더라. 전에는 사정사정해서 얘기를 몇 마디 들었는데, 이제는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많다. 물론 ‘친구’ 끝나고 대박 터졌는데 인사 없다고 벼르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큰 흥행 성공을 거둔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찍을 때 많이 변한다.
“나는 감독이자 제작사 대표다. 촬영횟수(78회), 순제작비(55억원) 모두 목표치에 맞췄다. 다만 한 번 접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공격적인 피칭만이 살 길이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래서 LA 현지 로케이션과 컴퓨터 그래픽에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권투 체육관을 지었다 허무는 등 까다로운 구석도 많았다는데.
“동아체육관 세트를 지었다가 촬영을 포기했다. 피가 튀어 시커멓게 된 자국, 때가 꼬질꼬질한 포스터 한 장 이런 걸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표현하는 데 핵심은 패션이라고 생각해 신경을 많이 썼다. 오만이 아니다. 이런 자잘한 것이 허술하면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
- ‘친구’ 시사회를 앞두었을 때로 돌아가보자. 그 때의 기분과 지금의 차이는?
“사실 ‘친구’ 때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다. 이번 영화도 수 십, 수 백 번을 보아 흥분감은 없다. 그러나 단 하나, 절대 입장료가 아까운 영화가 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어떤 점이 그런 자신을 갖게 하는가.
“이 영화는 배우의 몫이 큰 영화다. 유오성은 더 잘할 수 없을 만큼 잘했다. 복싱이란 맨손펴기, 줄넘기, 달리기가 기본이 되는 참 꿀꿀한 운동이다. 그러나 유오성은 1년간 다른 아무것도 안하고 이것만 해서 몸을 만들었다. 수십 년 전의 부모님 연애사진을 보면 참 어려웠을 때인데도, 웃으면서 사진 찍은 게 보인다. 어려운 생활 속에도 웃음은 있다. 이런 느낌을 살렸기 때문이다.”
-왜 또 과거로 돌아갔는가.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복고 향수를 무기로 삼겠다는 생각도 없다. 김득구 이야기가 떠올랐을 뿐이다. 과거를 담는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위험 부담을 안고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친구’가 성공한 것이 호남에 정권을 빼앗긴 부산시민의 억눌린 정치의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느 정치인 보좌관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의 해석은 감독 몫이 아니다. ‘친구’를 남성 멜로, 동성애 코드라고 불러도 할말이 없다.”
-새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의 능력도 향상되는가.
“일취월장한 느낌이다. 관객의 눈과 맞추는 능력이 강해진 느낌이다. 한 장면으로 말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다.”
-‘친구’ 후반 작업을 하며 ‘챔피언’의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했다. 지금도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있나.
“그렇다. 코미디다. 얼마나 웃길 수 있는 지 알고 싶다. 이번 영화에서는 웃다가 펑펑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다음에는 너무 웃어 입이 얼얼하고 눈물이 나는, 그러나 메시지는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겠다. 벌써 배우가 2, 3명으로 압축됐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