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이주일(40)의정생활 시작되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나의 이력서] 이주일(40)의정생활 시작되다

입력
2002.05.10 00:00
0 0

1992년 6월초 마침내 의원회관에 내 사무실이 생겼다. 734호실이었다.이미 책장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고 책상 위에는 ‘국회의원 정주일’이라는 큼직한 명패도 놓여있었다.

감격스러울 법도 하련만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때 금배지도 받았다. 진짜 금으로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도금된 것이어서 조금 실망했다.

14대 국회는 6월29일 개원했다. 국회의원 임기는 5월30일부터 시작했지만 당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일정 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당초 예정일보다 1개월 정도 늦춰진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한달 동안 국회가 공전된 그때 나는 이미 국회의원이 된 사실을 후회하고 있었다.

개원 당일, 그래도 아침 일찍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의원회관에서 잠시 쉬었다가 정주영(鄭周永) 대표, 김정남(金正男) 원내총무, 김동길(金東吉) 의원 등 국민당 의원 30여 명과 함께 의사당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정 대표는 “이 건물, 내가 지은 거야”라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현대건설이 1975년 완공한 국회의사당에, 그것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입성하는 것이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지금도 그때 장면이 눈에 선하다. 방청석에는 각 지역구 주민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모든 시선이 다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내 자리로 걸어가는데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의사당이 아니라 무슨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 자리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갔다. ‘목에 힘 들어간다’는 말을 몸으로 체험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개원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너무 좋았다. 개원 전 근 한달 동안 여야가 극심한 감정싸움을 했는데도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은 서로 당선을 축하해주며 화기애애했다.

“국회가 소문처럼 살벌한 곳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여야 의원들을 지연과 학연으로 연결짓다 보면 모두 형 동생 사이가 아닌가.

본회의장에서 죽이네, 살리네 싸우다가도 문 하나 열고 휴게실에 들어가면 “너, 너무 한 것 아냐?” “그러는 형님은요?”라고 농담까지 건네는 곳이 바로 국회다.

개원 다음날 나는 작은 실수를 하나 했다. 바로 그 휴게실에서였다. 동료 의원 2, 3명과 자리를 잡은 나는 커피를 시켰고 휴게실 아가씨에게 커피 값으로 1만원을 냈다.

그런데 다른 자리에 있던 의원들까지 모두 껄껄대고 웃는 게 아닌가. “정 의원, 처음부터 돈 너무 많이 쓰지 마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왜 그러지? 고작 만원 한 장 낸 것인데….

얼굴이 벌개진 아가씨가 내게 말했다. “의원님, 여기는 돈 안내요.” 그때만 해도 의원 휴게실이 무료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렇다고 그냥 당할 이주일인가. “저도 압니다. 그러나 나라의 녹을 먹는데 공짜로 마실 수 있나요? 오늘은 제가 내겠습니다.” 그래도 의원들의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이처럼 나를 보는 의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코미디언까지 국회의원이 되다 보면 의사당이 더러워지고 말 것’이라는 눈치였다.

더욱이 나나 정주영 대표, 김동길 의원 모두 그들 눈으로 보면 모두 ‘외지인’이니 그 괄시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나를 반기고 환영해준 사람은 휴게실과 안내 데스크의 아가씨, 국회 경비원, 사무처 여직원 뿐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