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언제나 4ㆍ19 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문학평론가 김 현)김 현만이 아니었다. 1960년 4월19일 “혁명의 신선하고도 독한 공기를 직간접으로 쏘인” 젊은이들에게 시간은 멈춰 섰다.
한국 문단의 4ㆍ19세대는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보람’(최인훈의 ‘광장’ 서문)을 함께 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피우고 맺은 꽃과 열매의 모양은 달랐지만, 그 뿌리는 한결같이 4ㆍ19였다.
4월 세대 문인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4ㆍ19 42주년을 맞아 기획된 ‘4월혁명과 한국문학’(창작과비평사 발행)의 좌담 자리다.
소설가 김승옥, 시인 이성부, 평론가 염무웅 임헌영씨 등 올해 진갑(進甲)을 맞는 문인과 이들의 선배인 평론가 김병익(64), 후배 평론가 최원식(53)씨 등 6명이 4월 혁명과 1960년대를 다시 불러냈다.
자유당 정권 때의 언론, 젊은 문인들의 문학수업, 잡지 ‘사상계’의 영향력, 순수ㆍ참여 논쟁 등 1960년대의 기억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대학 4학년이었던 김병익씨는 웃고 떠들고 장난치면서 시위하는 동성고 학생들을 보았다.
진지함과 엄숙함 없이 시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생각에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는 김씨는 42년이 지나서 고백한다.
“어떤 혁명적인 사태라는 것이 진지한 얼굴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우습고 가볍고 장난스럽게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겉모습만 보고서 사태의 변화, 변혁이라는 것을 잘못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창작하는 문인의 자기고백은 60년대 문학을 내밀하게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소설가 김승옥씨는 4ㆍ19 이후 번역되기 시작한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아, 소설이란 자기 시대 이야기를 이렇게 아프고 절실하게 쓸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느낌을 충격적으로 받았다.”
그것이 그의 소설 창작의 동력이 되었다.
남로당원이었던 부친의 전력 때문에 받은 상처,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기억 등 김씨의 개인적 체험은 60년대 문학의 한 표정이 되었다.
시인 이성부씨에게 문학을 가르친 것은 교과서가 아니었다. 그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월북시인 정지용, 이용악의 시를 대학노트에다 깨알같이 베꼈다.
“4ㆍ19는 당시 반공 일변도의 교육을 다시 생각해보는 분화구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게 이씨의 지적이다.
이들이 공유한 4ㆍ19 정신은 다양한 모양으로 분화한다.
염무웅씨는 학생시절 가장 친하게 지낸 김현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글이 4ㆍ19에서 한 걸음도 나아간 바가 없다는 김현의 글을 읽고 처음에는 동감하기 어려웠다. 김현의 예술주의와 4ㆍ19의 비판성은 상반된 것이라고 느꼈다. 한참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까 사실은 4ㆍ19에는 4ㆍ19를 정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헌영씨는 “욕심 같아서는 4ㆍ19를 대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최원식씨가 짚은 대로 “지금 그 시대를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내부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어서 거대한 역사적 동력화가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월 세대에게는 순수한 열망의 힘이 역사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 때문에 4월 혁명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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