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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한국 사회 '아버지'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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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한국 사회 '아버지'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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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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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도덕적 감각이 결여된 상류층을 향해서 자각과 분발을 요구하는 말일 것이다.나는 이 말과 결부시켜 봄직한 우리사회의 병리적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그 구조의 역사성에 주목하고 싶다.

대략 10년 전쯤의 일일 텐데, 당시 발표되었던 시나 소설의 주인공은 많은 경우 편모슬하에서 성장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경향은 문학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장안의 화제였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도 아비 없는 자식이었고, 그 자신이 연인에게 복중태아를 남긴 채 죽지 않는가.

평론가들은 이런 인물설정이 우리사회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아버지의 부재야말로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집약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아버지는 법, 권위, 전통, 중심, 표준 등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의 아버지다. 이런 아버지의 부재는 근대화 이래 한국인이 갖게 된 불행한 의식을 잘 설명해준다.

뿌리없이 이룩한 근대화

한국의 근대화는 전통의 계승과는 무관하게 시작되었다. 전통의 파산과 단절, 외세에 의한 식민지화와 궤를 같이 한 것이다.

뿌리 없이 부유하게 된 지식인의 눈에 근대화는 서양화와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낯선 규범과 가치의 세계로 소외되는 과정이었다.

이 소외의 과정에서 초래된 것은 무엇보다 한국적 정체성의 상실이다. 한국인의 불행한 의식은 이런 상실된 정체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런 상실감의 육화된 표현이 ‘나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다’이고, 그런 자각 속에서 움트는 지향성은 당연히 아버지 되기 혹은 아버지 찾기다.

한국의 근대화는 아비 없는 자식의 아버지 되기로, 잃어버린 아비 찾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원래 한번 시작된 역사적 과정은 처음의 상실을 보상함 없이는 완료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확실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찾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제 타령이다.

그것은 특권층이 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만한 도덕적 순수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한국사회가 그 중심에 부성적(父性的) 상징을 수립하는 데 실패했음을 시사한다. 한국사회는 중심은 있으나 그것을 차지한 자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자리는 있으나 아직 아버지는 없다. 그리고 이것이 미완의 근대화 속에 놓인 한국사회의 구조, 식민지시대 이래 불행한 의식을 낳는 병리적 구조다.

라캉의 정신분석에 따르면, 정신병은 상징적 아버지의 자리가 정신세계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있을 때, 신경증은 아버지가 무의식에 행사하는 억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도착증은 아버지가 부인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도착증자는 아버지의 자리는 알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는 현존하는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도착증자는 그 기능을 보충하기 위해서 절편음란(페티시즘)에 빠지거나, 가학증이나 피학증을 통해서 스스로 아버지의 기능을 연출한다.

도덕성 결핍… 게이트 난무

요즘 유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은 우리사회가 어떤 도착증적 상황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그 중심이 제대로 구조화되지 않았고, 그래서 중심의 통합적 기능이 다른 것에 의해서 대체되거나 다른 장소에서 연출되고 있다.

이것은 상징적 아버지의 자리가 완전히 배제된 사회보다는 진일보한 사회인지 모른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이래 왜곡된 우리사회의 병리적 구조가 아직 치유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군사독재 이후 두 번의 민간정부를 맞았으나 아직 근대적 사회체제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 끔찍한 각종 게이트와 부조리한 입시현장은 바로 서지 못한 사회체제의 필연적 산물이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산물일 것이다.

올해의 선거가 기다려지는 것은 그런 체제가 낳는 불행한 의식에서 벗어날 날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환ㆍ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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