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서 중국 고위당국자와 홍콩의 한 기업인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스광셩(石廣生) 부장은 “중국의 경제발전은 아시아에 공동번영을 선사할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지오다노그룹 류궈첸(劉國權) 총수는 “중국 고도성장의 결과는 아시아 경제의 추락”이라고 되받아쳤다.
‘중국의 성공’이 결국 ‘아시아의 실패’가될 것이라는 ‘중국발 아시아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내부 부실이 폭발하면서 아시아 전체로 파급될 가능성(중국 위기론), 중국이 압축성장을 계속하면서 아시아의 모든 성장동력을흡수해버릴 가능성(중국 위협론)이 각각 공존한다는 우려다.
▼중국발 금융위기 시나리오
중국 위기론은 중국의 화려한 고성장이 멈춰서는 순간, 그 이면에 가려져 있던 부실채권 등의 치부(恥部)가 드러나면서 아시아로 급속히 전염될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중국 당국은 부실채권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5%(2,500억달러)로 통제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골드만삭스는GDP의 30~50%(3,000~5,000억달러), 파이낸셜타임즈는 45~70%로 추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잠재부실.
중국 TV시장의 경우시장수요(수출 포함)는 연간 3,000만대이지만 생산량은 4,000만대에 달할 만큼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5년동안 가격이 50% 폭락했지만,200여개 생산업체 가운데 파산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업체들이 성(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정부가 경제논리만으로 도산시키기에는 지역경제에 미칠 후유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기관 최고의 대출고객인 국유기업 가운데 3분1이상은 적자 상태이다.
KOTRA 박한진(朴漢眞) 중국팀장은 “중국 금융위기가 현실화하면 홍콩에 상장된 중국기업(2,000~3,000억달러)의 자산가치가 폭락, 홍콩 및 아시아 전체의 금융시스템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공동화 시나리오
일본의 유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최근 “산업시설과 자금 등 모든 것을 중국이 빨아들이고 있다. 성장동력 전부가 휩쓸려 들어가 아시아 전체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중국과 홍콩으로 들어오는 외국직접투자는 1,000억달러에 육박, 아시아전체 투자유입액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의 기업들은 보다 싼 노동력을 찾아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고 있고, 중국의 저가 공산품이 아시아를 석권하면서 아시아 각국의 토종산업은위기에 봉착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현준(趙顯埈)박사는 “중국이 아시아 각국에 수출하는 것은 무한대의 저임 노동력을 이용한, 디플레 그 자체”라며 “아시아 각국의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기론의 허와 실
그러나 ‘바퀴가 굴러가는 한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듯’ 중국이 성장을 계속하는 한 중국 금융위기론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朴繁洵) 박사는 “중국은 WTO가입,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등 성장모멘텀이 꾸준히 제공되고 있다“며”1997년 동아시아 위기때 한국이나 태국과는 달리 부실을 자체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중국의 13억 내수시장을 고려하면 아시아 각국이 대응하기에 따라 중국위협론은 언제든지 중국기회론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홍콩총상회 에바 쵸 국제상무부장은 “중국발 아시아위기론은 중국의 급성장에 불안한 일본이 자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이데올로기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유병률기자
bryu@hk.co.kr
■장윈링 中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장
장윈링(張蘊嶺) 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중국발아시아 위기론은 일본과 서구의 이데올로기적 음모”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내 부실채권에 대해서도 “중국경제가 성장하는 한 통제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장소장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999년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제안해 만든 ‘동아시아비전그룹’의 중국측 대표이다.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시 외환위기 발발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자본시장 개방은 세계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점진적ㆍ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한국의 외환위기를 목도했기 때문에, 준비 안된 개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부실채권으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부실채권은 과거의 문제이고, 처리능력도 생겼다. 성장을하는 한 부실채권은 흡수가능하다. 중국은 워낙 커서 모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융화할 수 있다. 현미경으로 보면 중국은 문제점 투성이지만, 망원경(내수규모와 고성장 전망)으로 보면 희망적이다.”
-아시아경제를 공동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인가.
“중국으로 몰리는 외국자본과 동남아로 오는 외국자본은 성격이 다르다. 중국이 블랙홀이라는 것은 맞지 않다. 오히려 동아시아는 중국경제 발전의 최대 수혜를 입을 것이다. 대응을 못하는 일부 국가는힘들겠지만, 중국과 상호협력하는 국가는 공동번영을 누릴 것이다.“
-중국발 아시아위기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의 고성장에 위협을 느낀 일본과 서구의 이데올로기적 음모가 내재돼 있다. 서구학자들은 10년전부터 중국경제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언해 왔지 않는가. 외환ㆍ금융위기 둘 다 가능성이 없고, 중국이 자체적으로 붕괴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中 고도성장 그늘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 톈안문(天安問) 광장에서 1㎞ 남짓 떨어진 쇼핑가 왕푸징(王府井) 거리. 유명 서구 브랜드 의류로 가득찬 화려한 쇼윈도와 이 상점에서 물쓰듯 돈을 쓰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서울의 청담동이다. 1,000위안(16만원)이 넘는 한끼 식사는 사치도 아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 불과 30분 거리인 베이징 남역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가재도구를 우겨넣은 자루를 짊어진 남루한 사람들이 쏟아진다.
대부분 스촨(四川)ㆍ안후이(安徽)ㆍ산시(山西)성 등 서남쪽 농촌 출신들이다. 중국식 자본주의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고향을 등진 이들은앞으로 ‘다꽁자이(打工仔)’라 불리는 날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온 가족이 상경했다는 스촨성출신의 한 농민은 “이곳에서는 막노동을 해도 한달 800원(13만원)은 번다. 고향에서 끼니 걱정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베이징시는 지방 주민들의 상경이 급증하면서 이들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자, 거주증을받지 못한 사람은 열차에 태워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추방하고 있다.
눈부신 중국의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심각한 불평등ㆍ불균형의 그늘이 감춰져 있다. 동부 연안에는 신흥 부자들이 즐비하지만, 서부 내륙의 주민들은 절대 빈곤에 처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컬러TV를 두대씩이나 들여놓고 살지만, 농촌 주민들은 라디오만 해도 감지덕지다. 13억 인구에도 불구하고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한 것도, 중국경제에 대한 평가가 인플레 됐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이 같은 빈부격차ㆍ지역격차 탓이 크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전체 부(富)의 40%이상을 1% 고소득층이 점유하고 있다. 하루벌이가 2달러 미만인 중국인이 53.7%, 1달러 미만은 18.5%에 달한다.
동부 12개성과 서부10개성간 소득격차는 2.4배, 상하이(上海)와 구이저우성(貴州省)간 격차는 9.6배에 달한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의 실제 실업률이 공식 통계(2.9~3.1%)와 달리 8% 수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민대학(人民大學) 금융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왕쩡웨이(王政僞)씨는 “외국인들 상하이의 벤츠 행렬에 한번 놀라고, 내륙지역의 우마차 행렬에 또 한번 놀란다“며 “중국은 과대평가돼 있다. 내부의 산적한 문제부터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박월라(朴月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사무소장은“심각한 불평등이 사회문제화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정치체제가 낡았다는 반증”이라면서 “그래서 정치체제에 변화가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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