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입력
2001.12.28 00:00
0 0

▼'시간의 철학적 성찰' 소광휘씨▼저작상 인문 부문 수상작인 ‘시간의 철학적 성찰’(문예출판사 발행)은 시간론 연구의 권위자인 철학자 소광희(67ㆍ서울대 명예교수)씨가 시간 연구에 한평생을 바쳐 얻은 노작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상식적ㆍ과학적 차원에서 본 일반 시간론(1편)과,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 영미 철학에 이르는 철학적 시간론의 역사(2ㆍ3편)다.

그는 이 책을 ‘시간에 대한 철학적 담론의 지번 매기기’ 작업이라고 말한다.

여러 철학자들이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하게 표현한 시간의 개념을 분명히하고, 온갖 담론을 나름대로 배치하고 정리함으로써, 철학적 시간론의 ‘지도’를 만든 것이다.

“시간론은 젊은 시절부터 꼭 다루고 싶었는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여러 책을 읽으면서 시간론을 뒤지는 게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힘들었지요. 이제 시간론의 지번을 매김으로써, 누구나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철학적 시간론 가운데 그가 가장 공감하는 것은 훗설의 현상학적 시간론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시간론이다.

“훗설은 의식의 흐름에, 하이데거는 살아있는 현존재에 시간을 놓았지요. 그들이 말하는 시간은 개인의 체험이 묻어있고 생명과 닿아있다는 점에서 가장 공감이 갑니다.”

철학서 하면 흔히 딱딱함을 떠올리지만, 이 책은 시적 감성이 밴 아름다운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를테면 일반 시간론의 서두에서 원시인들이 자연에 대해 느꼈을 경탄과 두려움을 써내려간 대목은 한 편의 시나 수필처럼 읽힌다.

“젊을 때는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느냐”는 그의 말에서 문학에 대한 사랑이 감지된다. 여러 철학자의 시간론을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시간론을 내놓고 싶은 욕심은 없었을까.

“처음 그런 야심을 갖고 시작했지요. 하지만 너무 미묘한 주제이고 과욕이다 싶은 게, 남은 인생을 볼 때 어려울 것 같아요.”

시간론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는 대신 존재론을 정리하는 책을 쓰고 있다.

“철학의 궁극적 주제는 시간론과 존재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시간론부터 정리한 것이지요. 지금 준비 중인 존재론은 존재론 일반, 서양철학 존재론, 동양철학 존재론의 3부작으로 구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철학적 존재론의 지번 매기기가 될 것입니다. ”

결국 그는 철학의 두 대륙, 시간론과 존재론을 탐구하며 보낸 평생을 정리하고 후학들에게 길잡이가 될 지도를 완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1934년 대전 출생 ▲서울대 철학과, 동대학원 철학박사 ▲1967~99년 서울대 교수 ▲한국철학회 회장 역임 ▲저서 ‘기호 논리학’ ‘패러독스로 본 세상’ ‘형이상학적 존재론’ (이하 공저) ‘현대의 학문체계’ ‘하이데거의 언어사상’

/오미환기자 mhoh@hk.co.kr

▼'국가와 권위' 박효종씨▼

600쪽이 훨씬 넘는 방대한 저서 ‘국가와 권위’로 저작상을 수상한 박효종(朴孝鍾ㆍ54) 교수의 문제의식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지난 해 4.13 총선과 의ㆍ약분업 문제 등에서 나타난 ‘시민 불복종(不服從)’의 현실이기도 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저 음험한 ‘게이트’들의 현실이기도하다.

박 교수는 “수많은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관료들,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들이 버젓이 공직자가 되어 ‘국가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권위를 언급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암담한 정치현실과 부실한 교육현실에 실망한 나머지 국가 공동체를 떠나 해외로 이민가고자 마음을 굳힌 사람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가 도덕적 권위를 자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민의 정치적 헌신과 복종이 없는 국가 공동체란 생존조차 불가능하다. 반대로 국가가 주는 공리적 혜택 없이 살 수 있는 시민은 없다.

박 교수의 ‘국가와 권위’는 이렇게 ‘국가와 시민의 복종 사이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정치철학적으로 해명하려 한 논저이다.

“이 문제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 이래의 ‘영원한 문제’입니다”라고 박교수는 말한다.

그는 책에서 소크라테스 이후 홉스, 로크, 루소 등의 근대 사회계약론자를 거쳐 캐롤 페이트먼 등의 국가론자는 물론 R. P. 볼프의 철학적 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까지를 두루 고찰한 뒤 “국가에 대한정치적 복종은 ‘시민의 의무’라기보다는 ‘시민의 덕목’이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나는 본의적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정치적 복종의 ‘의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의 복종은 자기중심주의나 자기이익 추구를 억제한다는 ‘극기’와‘절제’의 논리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때 그가 말하는 ‘덕목(virtue)’은 서구 그리스도 신학자들이 신을 믿는 행위를 ‘덕’의 개념에서 보았듯이, 신학적인 의미와 연결돼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국가에 대한 복종의 마음가짐을, 국가는 정의롭고 합리적인 정책을 강구하고 추구해야 할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박 교수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이러한 입장은 그가 신학도로 출발, 교육학으로 석사, 정치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학문적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2년 반 걸려 작업한 이 저서에서 그는 통상의 학술서들에서 볼 수 있는 각주(脚註)를 거의 쓰지 않고, 생생한 사례와 유비적 표현을 구사하며 거침없는 논지를 펼쳐나간다.

“이 상을 받는다니, 새삼 공부하는 나는 과거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게 된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미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 시민’의 문제가 화두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밝혔다.

▲1947년서울 출생 ▲가톨릭대 신학부 졸업(1974) 서울대 교육학 석사(1979) 미국 인디아나대 정치학박사(1986) ▲현 서울대 사대 국민윤리교육과교수 ▲저서 ‘합리적 선택과 공공재 Ⅰ,Ⅱ’(1993) ‘한국민주정치와 삼권분립’(1998) 등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호학의 즐거움' 김경용씨▼

호학은 매혹적이지만 어려운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용(62) 마운트 버논 나자렌대 교수는 그러나 “기호학은 사람들이 사는 조건과 모습과 전망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실천으로 옮겼다. 김 교수의 저서 ‘기호학의 즐거움’(민음사 발행)은 기호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화 전반을 읽어낸 작업이다.

그의 분석은 밀란 쿤데라의 단편소설 ‘에드워드와 신’에서부터 김병기 화백의 작품과 영화 ‘서편제’,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 VODKA) 광고까지 뻗쳐 간다.

예를들어 김 교수는 TV 드라마 ‘모래시계’를 과거 사실의 그림자로 분석한다.

대중은 TV를 보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의미찾기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현실 이상으로 열광했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기호학적 실천 그 자체이다.” 그러나 국내외 서점에 나와 있는 기호학책들은 난해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김 교수는 “당장 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응접실 벽장에 모셔둔 보검은 그리 귀중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기호들의 체제이다. 인간은 언어로 된 일을 실천하면서, 언어로 된 약속과 소망을 좇아 살아간다.

인생에는 기호학이 깊이 스며 있다. 모든 사소한 일상은 기호학으로 해독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해외에서 학문활동을 하는 그는 토종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출간하는 저서인 만큼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한 작품을 고른 것이다.

‘서편제’나 ‘모래시계’는 재미동포에게 가장 인기있는 영상물이기도 하다. 그는 “비디오를 여러 차례 빌려보면서 세계를 보는 기호학적 시각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실제로 중ㆍ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그림그리기에 미쳐 지냈다.

그림에 깊이 파고들면서 시를 쓰는 즐거움도 알게 됐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화가의 길 대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해야 했다.

“생활 방편을 위한 외도였다”고 돌아본다. 졸업한 뒤 기독교방송에서 근무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41세의 나이에 도미했고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그는 “멀리 돌아왔지만 꿈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호학을 통해 회화와 문학을 즐긴다. 1998년 ‘미주문학’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뒤늦게 등단했다.

화가가 되려던 꿈은 시인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기호학의 즐거움’에서 다루지 못한 텍스트를 분석한 책을 쓰는 한편, 그간의 작품을 모은 시집을 펴낼 계획이다.

“나의 인생은 어떤 운명에 의해 완행열차처럼 매우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 버논의 자택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너무나 뜻밖의 기쁜 소식”이라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우리나라 학자들에게도 커다란 격려와 고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39년 서울 출생 ▲한국항공대, 뉴욕주립대(버팔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1984) ▲1988~ 마운트 버논 나자렌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저서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미디어신화:대중문화의 허위의식 등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심사평

금년에는 여러 악조건에도 출판계의 강한 의욕은 꺾이지 않았으며, 이를 반영하듯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에 출품한도서는 예년 수준을 훨씬 웃돌아 지난 해에 비해 종 수는 35% 가량 증가한 1,048종 1,855권에 달하였다.

전체 출품도서의 절반이상을 어린이 책이 차지했다는 것은 최근 출판계 관심의 소재를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역사나 예술 등에서는 전문 분야의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 써 일반 독서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려 한노력도 눈길을 끌었다.

역대저작상 수상작은 한국학계의 성과를 보여주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의 전문 학술서적이 많았는데 금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저작상 후보 저술이 선정을 어렵게 할 정도로 심사위원들을 고민케 하였다.

그러나 예심과 본심 과정에서 논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된 저작상수상작은 개성 있는주장과 깊이 있는 식견으로 심사위원 전원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먼저 ‘시간의 철학적 성찰’은 시간관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장을 개진했다고 평가되었다.

이 저서는 시간의 물리적 개념을 정의한 후, 주요 서양 사상가의 철학적 시간관을 심도있게 분석하려고 시도하였다.

요즘같은 세태에 순수철학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자세가 각별히 돋보이는 저술이다.

거기에는 일생철학적 고찰에 몰두해온 저자가 일관성있게 탐구한 시간관이 드러나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아시아적 시간관에 관해 덜 언급된 점은 설사 서양철학 전공저자임을 감안하더라도 읽는사람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으로 ‘국가와 권위’는 탈국가시대에 국가 구성원에게 나름의 지침을 내렸다는 점에서 주제 자체가 시의성 있는 저서이다.

이 책은 논지가 산만하지 않다는 점, 해석이 무리없고 평탄하다는 점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교과서식 편제를 취한 이 저서에 주석이 매우 드물다는 것은‘보통’수준을 월등 넘은 연구자의 주제 소화력과 서술기법이 아니라면 감히 하기 어려운 시도라고 지적될 수 있다.

‘기호학의 즐거움’은 전문서는 아니지만 대중문화 전반을 기호학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현실감각이 적절하게 표출되었다는 점과 학문세계를 현장에 접목시키려고 한 점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가 오랫동안 미국에서 학문을 하면서도 TV연속극 '모래시계', 영화 '서편제' 등 대중문화를 통해 기호학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애쓴 점 등이 주목받을 만하다.

무엇보다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수상작을 내지못한 것은 큰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그어느 때보다 국민적 기대를 모으고 있는 만큼 앞으로 과학기술계의 가일층 분발을 기대하게 된다.

시사ㆍ교양 분야에서도 좋은 책들이 많이 접수되었지만 기왕에 이곳저곳에 발표한 글들을 단순히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경우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또한 대부분 외국 것의 번역이 많아 우리나라 저자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저술이 상대적으로 열세하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근래지식의 대중화를 강조하는 풍조와 함께 그 강조가 지나쳐 ‘쉬운 글’이 너무 판치고 본격적인 연구저술이 밀리고 있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사회의 지적 발전이 전문적 연구의 활성화에 달려있는 만큼 학계와 출판계가 체계적인 연구결과를 출판하는 데도 한층 더 힘써야 함은 말할 나위없다.

이 점에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이 해야할 역할에 기대를 걸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 출판계는 그동안 양적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 온 만큼 앞으로는 질적 ‘선진화’를 위해서도 출판 조사와 기획의 조직화 및제작과 편집의 체계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하순(車河淳ㆍ서강대 명예교수) 김영식(金永植ㆍ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협동과정 교수) 박명진(朴明珍ㆍ서울대 언론정보학과교수) 공성진(孔星鎭ㆍ한양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