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울 역촌동 결핵환자촌의 겨울나기
알림

서울 역촌동 결핵환자촌의 겨울나기

입력
2001.12.28 00:00
0 0

“단 하나의 소원은 죽기 전에 이 산소통 벗어 놓고 바깥 공기 한번 신나게 쐬어 보는 거야.”서울 은평구 역촌동 산31 서대문시립병원 뒤쪽에 자리한 움막 같은 1평짜리 집. 20년간 앓아온 결핵으로 폐의 3분의 2 정도가 잘려 나가 잠시라도 산소를 공급받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나수남(羅水男ㆍ55)씨의 보금자리다.

나씨가 부담해야 하는 산소값(하루 1통)은 한 달에 40여만원. 정부에서 매달 26만원씩 나오는 생계비로는 산소값 대기에도 턱 없이 부족하다.

기관지천식, 만성 심장판막증, 위염, 당뇨 등 오랜 병마로 얻은 합병증 치료약값과 1평 보금자리를 데우는 데 필요한 연탄값, 월세 걱정에 노인처럼 굽어버린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서울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역촌동 결핵환자공동체마을. 판자를 엮어 만든 움막집들이 금세라도 허물어질 듯 붙어 있는 이곳에는 나씨 외에도 300여명의 결핵환자들이 고단한 삶을 힘겹게 꾸려가고 있다.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40여년 전. 바로 아래 시립 서대문병원에서 결핵 치료를 받은 무의탁 환자들이 치료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앉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 때 1,000여명까지 삶을 이어갔던 이 곳에는 아직도 갈 곳 없는 결핵환자들 이 동네에 단 2대뿐인 세탁기로 옷을 빨고 꼬불꼬불 미로 같은 골목길을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오르내리고 있다.

공동체 식구 중 정부로부터 생계보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불과100여명. 나머지는 교회나 독지가들의 기부금에 의존해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갈 곳 없는 결핵환자들이 갈 곳은 여기 밖에 없어요. ‘후진국병’이라고 다들 거들떠 보지도않아요.” 이곳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공동체마을 사람들에게 요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수 십 년간 사용돼 온 결핵치료제 ‘파스’가 제약회사의 부도로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기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5월 결핵 환자들의자활을 돕는 사단법인 ‘사랑의 보금자리’가 결성돼 이곳의 환자들을 돌보고 있지만, 올 겨울에는 온정의 손길이 즐어 이들의 필요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한 겨울을 나려면 마을 사람들에게 최소 연탄 4만장은 필요한 데 절반도 마련하지 못했어요.” 나씨는 기침을 겨우 멈추며 나직이 하소연했다.

자신도 결핵환자였던 사랑의 보금자리 이정재(李正宰ㆍ65) 이사장은 “결핵은 ‘20세기 감기’라 할 정도로 약과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며 “음식물쓰레기로 고민인 나라에서 이들을 방치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문의(02)385-2025, 국민은행 계좌 833-01-0094-677 예금주 사랑의 보금자리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