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초판이 나온 것은 1989년 5월이다. 시인은 그보다 두 달 앞서 세상을 버렸다. 스물아홉 살이었다.문인의 요절은 당사자의삶과 글들을 신비로운 아우라로 감싸기 쉽다. 기형도의 요절도 아마 그랬으리라.
그러나 ‘입 속의 검은 잎’에서기형도라는 이름을 지우더라도 이 시집은 스스로 한국 현대시사에서 자기 방을 요구할 만하다.
그 방은 좁고 어두운방이다. 시인은 그 안에서 외롭고 무섭다. 그런데도 그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어디서도 세상과의 불화가 해소될 수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일것이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 53쇄를 찍어 20여 만 부가 나갔다. 죽음의 이미지가 그득한 표제시는 이렇게 끝난다. ‘이 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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