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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세잔, 졸라를 만나다

입력
2001.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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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에밀은 꼼꼼하게 숙제를 마친 뒤의 해방감을 좋아했다. 소년은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 책상 앞에 앉아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비로소 홀가분해졌다고 느꼈다. 그의 성과물은 전적으로 ‘노동’에서 나온 것이었다.학교로 돌아가던 폴은 멈춰선 채 넋을 잃고 생트-빅투아르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은 움직이는 것 같았고, 청회색부터 적보라색까지 온갖 빛깔을 품고 있었다.

그는 오래오래 산에 열중했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때 비로소 붓을 잡았다.

프랑스 작가 레몽 장(76)은 위대한 화가와 작가의 오랜 애증(愛憎)을 그렸다. 레몽 장은 너무나 잘 알려진 두 사람의 우정을 촘촘하게 짚어가면서, 두 사람이 걸어간 서로 다른 창작의 길을 안내했다.

에밀 졸라는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었고, 폴 세잔의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였다. 같은 중학교에서 사귄 두 소년은 함께 물놀이를 다녔고 시를 읊었다.

집안 사정으로 졸라가 파리로 떠난 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미술과 문학에 관한 논쟁을 벌였다.

세잔은 지독한 장난기와 실험정신으로 충만했지만, 졸라에게 예술은 숭고하면서도 사실적인 것이었다.

1860년 졸라는 세잔을 오랫동안 조른 끝에 파리로 데려왔다. 졸라는 파리의 낭만과 몽상과 광기가 그림을 시작한 세잔에게 훌륭한 영감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6년 뒤 살롱전에 출품된 세잔의 그림은 전시조차 거부됐다.

소설 ‘목로주점’과 ‘나나’가 커다란 반향을 부르면서 졸라는 전성기를 맞았다. 그때 세잔은 높이 올라가는 친구에게 “자네에게 칭찬을 보내는 건 내 몫이 아닌 것 같네”라는 편지를 보낸다. 세잔은 자신의 고향인 엑스의 풍경에만 집착했다.

1886년 졸라가 ‘작품(L’oeuvre)’을 발표했을 때 두 사람의 우정은 깨졌다. 실패한 그림 앞에서 자살하는 무능한 소설 속 화가 랑티에가 세잔과 닮았기 때문이다.

랑티에의 어린시절 친구 상도즈는 졸라처럼 집요하고 규칙적으로 책을 써내면서 필생의 위업을 완성해 간다.

책을 읽은 세잔은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훌륭하게 추억을 담아내준 데 대해 감사하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두 사람이 걸어간 길은 그들의 몸에 흐르는 피가 결정지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깃털 펜을 청소하고 고집스럽게 종이를 채워나가는 노동이 몸에 밴 졸라.

그림이 잘 안되면 캔버스를 찢거나 붓을 던져버리는 충동으로 가득찬 세잔. 졸라에게 영광은 빨리 찾아왔고, 세잔에게는 더디게 왔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는 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졸라는 진보의 상징이 된다. 반(反)드레퓌스 쪽에 섰던 부르주아 세잔은 고독하게 칩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레몽 장은 졸라의 소설 ‘작품’에 대해 “광기와 파멸의 가능성 속에서 창조적 열정의 힘을 보여주려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귀한 창작 동기의 그늘에 가려진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던 걸까. 분방한 충동과 실험정신에 대한 살의에 가까운 질시 같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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