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의 전성시대다. 지상파 TV들은 저녁 시간부터 심야까지 각종 시트콤을 앞 다투어 방송하고 있고, 케이블 TV들도 경쟁적으로 외국 유명 시트콤을 내보내고 있다.방송사마다 봄철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새로운 시트콤을 대폭 늘려, 바야흐로 방송사간 '시트콤 전쟁'이 시작되었다.
KBS는 30일부터 변호사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꾸미는 일일 시트콤 '쌍둥이네' 를 내 보낸다.
시트콤 연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오지명과 강부자 정동환 등 중견 연기자들이 출연한다. 기존에 방송하던 '멋진 친구들' 역시 30일부터 '멋진 친구들2' 로 간판을 달리해 출연진을 대폭 교체한다. 라디오 스튜디오을 무대로 임현식 홍기훈 김홍표 박시은 조은숙 권민중 등이 웃음을 선사한다.
1993년 2월 한국방송 사상 최초로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 을 선보인 뒤 'LA아리랑' '순풍산부인과' 등으로 시트콤 왕국을 구축한 SBS 역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와 '@ 골뱅이' 등 기존의 2개 일일 시트콤 외에 5월 2일부터 정선경 등을 내세운 새 주간 성인 시트콤 '하니 하니' 를 신설한다.
성인 시청자의 높은 인기를 끌며 16일 막을 내린 '세 친구' 를 방송했던 MBC는 현재 내 보내고 있는 일일 시트콤 '뉴 논스톱' 에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또한 '세 친구'의 후속 프로그램이 준비되는대로 다른 시트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 경인방송(iTV)도 박소현 성윤아 조은숙 등 세 명의 여자를 내세운 성인 시트콤 '립스틱' 을 방송하고 있으며, EBS는 2일부터 미국 인기 시트콤 '못말리는 코스비' 를 내보내고 있다.
이뿐 아니다. NTV 의 '번디 가족' , 코미디 채널 의 '내사랑 레이몬드' '커플즈' 등 케이블 TV에서도 많은 외국 시트콤을 방송하고 있다.
5월이면 지상파 TV에서 방송하는 시트콤만 9개에 이른다. 1951년 'I Love Lucy' 를 시작으로 50년 역사를 가진 시트콤의 천국 미국에서도 현재 40여편이 방송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 방송사의 시트콤 편수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트콤의 브라운관 점령 현상은 방송사가 드라마에 비해 적은 제작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트콤은 등장 인물이 적고 스튜디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작이 용이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일일 드라마는 중심인물이 평균 20여명에 이르지만 시트콤은 10명 내외이고,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1억~2억원인데 시트콤은 1,000만~2,000만원이다.
시청자들은 시트콤이 1회분에서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1회 완결 구조인데다 단순한 성격을 가진 인물의 반복 출연함으로써, 극에 따라 갈등할 필요도 없이 재미를 느끼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프로그램 이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하는 시청자들의 게으름과 집중을 하기 어려운 TV시청 상황 때문에 시트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고 분석했다.
시트콤의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범람 현상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우선 시트콤 전문작가와 연기자의 부족은 구성이 엉성한 시트콤의 범람을 초래했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대사만 남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ABC 직장인 시트콤 'Spin City (이야기 도시)' 등이 절제된 대사와 내용을 통해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시간과 여운을 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시트콤 홍수는 전통 코미디의 설 자리를 빼앗아 코미디 장르의 위축을 불러왔다.
청소년을 비롯한 시청자의 정서에도 적지 않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트콤이 1회 완결구조에 웃고 즐기는 내용 위주여서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멀리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한번에 끝내고 즐기려는 1회용 인스턴트 문화를 확대재생산한다." 문화평론가 마정미(협성대 강사)씨의 비판이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우리가 뜨면 안웃곤 못배기죠"
"그때만 해도 시트콤이라는 장르도 생소했었고, 제 자신도 시트콤에 맞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순풍산부인과'로 시트콤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오지명은 이렇게 말한다. 1993년 최초의 시트콤이라 할 수 있는 KBS'오박사네 사람들'은 극 자체보다도 어리숙하면서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치과의사 '오박사'의 캐릭터가 강했다. 그는 이 인물을 좀더 과장하여 '순풍'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96년 막내린 'LA아리랑'에서 이영범은 잔꾀를 잘 부리는 철없는 아들 역으로 캐릭터 설정에 성공하여, 현재의 작품(SBS 청춘시트콤 '골뱅이')에까지 시트콤 단골 출연자로 이미지를 굳혔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할머니 여운계도 당시 인상깊은 배역이었다.
96년부터 3년간 방송된 MBC '남자 셋 여자 셋'은 시트콤 전성시대를 열면서 청춘스타들을 줄줄이 배출했다. 엽기적인 촌티패션을 유행시킨 이의정과 잘생겼지만 '썰렁한'남자의 대명사 송승헌, 그리고 '덜렁이'신동엽과 새침한 우희진 등이 그들이다.
'순풍산부인과'는 중견 탤런트들이 과감하게 이미지를 변신하여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박영규도 근엄하게 '무게'잡던 모습에서 주책맞은 백수로 '망가지며'스타가 되었다. 품위있는 어머니 선우용녀도 어린애같고 푼수 같은 캐릭터로 변했다.
외모로는 지극히 남성답고 위풍당당한 권오중도 친근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이웃집 오빠로, 시트콤 단골스타가 되었다.
이후 '이미지 변신'이 시트콤 스타의 관건이 될 정도였다. 얼마전 종영한 MBC '세친구'의 출연진은 대부분 이에 성공했다. 귀엽고 사람좋기만 했던 윤다훈은 바람둥이의 표상으로 '선수'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소곳한 사극의 여인 안연홍도 여우같고 야무진 여자로 감쪽같이 변신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고집쟁이 노인 신구도 종전의 근엄하고 합리적인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인 행각이 돋보인다.
시트콤으로 스타가 된 배우들은 대부분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 드라마에서 다져진 연기력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거나 그 허를 찌르는 데서 사람들은 포복절도한다. 반면 원래부터 '웃기는'것을 업으로 하는 개그맨들은 오히려 시트콤에서 맥을 못추는 경우가 많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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