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연출 장기오. 21일 KBS1 밤 11시) 제작팀에게 지난 겨울 폭설은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었다. 3년 전에 기획되었지만 제대로 된 설경을 담을 수 없어 계속 미뤄지던 차에 이번 폭설로 눈 쌓인 오지의 아름다움을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홍어'는 1960년대 깊은 산기슭 눈 쌓인 외딴 집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겪는 성장기의 혼돈과 주변 인물들과의 어긋난 인연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깊이있는 시선으로 포착한 김주영의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어머니(김해숙)와 열세 살 소년 세영(김수동)은 추운 겨울날, 갈 곳이 없이 떠돌다 집으로 숨어 들어온 열 여덟살의 삼례(정다빈)와 같이 살게 된다.
어머니는 문설주에 홍어를 걸어 놓고 작부집 여주인과 눈맞아 도망간, 별명이 '홍어'였던 바람둥이 아버지(임동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일찍 성에 눈을 뜬 되바라진 삼례는 어린 소년의 마음을 설레게 하다 결국 집을 나가 작부가 되고, 어머니는 낯선 여자가 맡기고 간 아버지의 또 다른 혈육까지 맡는다.
'지아비를 기다리는 여인의 한'이라는 통념을 넘어서는 반전이 이 드라마의 묘미.
아버지는 결국 집에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삼례처럼 집을 나간다.
아버지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홍어'라는 상징물과 성장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적절히 묻어난다.
'몸은 개천에 있어도 마음은 구름처럼 떠다녔던', 자유분방한 삼례와 어린 아들이라는 분열된 자아를 놓고 갈등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복잡다단한 삶의 단면이 보인다.
40~ 50㎝가 족히 넘을 정도로 풍성한 눈밭에서 펼쳐지는 성장기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 폭의 그림이다.
파르스름하게 흩날리는 눈발과 맑은 석양빛도 감탄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갈등과 심리묘사에 초점을 둔 원작과는 달리 드라마는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 유년기의 상징물과 추억거리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
'TV문학관'의 고아한 향취를 좀더 많이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촬영은 2월 5일부터 강원도 평창에서 보름간 진행되었다. 특수효과 장비마저 동파될 정도로 추운,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날씨에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눈이라면 진저리가 쳐진다'며 그간의 고생담을 털어놓는다.
장기오 대(大) PD는 이문열의 '금시조' 선우휘의 '불꽃'등 25편을 연출한 'TV문학관'의 장인. 아역과 신세대, 중견 탤런트 모두 연기가 원숙하고 자연스럽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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