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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봄빛 유혹, 제주는 수줍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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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봄빛 유혹, 제주는 수줍어라

입력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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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도 올 겨울은 유난했다. 눈이 많이 내렸고 바람도 세찼다. 하지만 섬은 이제 수줍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3월초의 제주는 봄기운에 몸살을 앓고 있다.제주의 봄은 바닷길을 택한 듯하다. 유난히 바다의 색깔이 아름답다. 봄빛 파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세화 해변. 섬의 북동쪽에 있는 작은 항구마을이다.

검은 방파제 끄트머리에 하얀 등대가 반짝거리고 그 옆으로 파도가 넘실대며 밀려 들어온다. 색깔이 예사롭지 않다. 먼 바다에서는 검정에 가깝다가, 다가오면서 진한 기운을 풀며 엷어진다.

파란색 무지개 같다. 바로 봄빛이다. 그 봄을 맞으러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성산포와 세화를 연결하는 해안도로가 나 있다. 길 전체가 아름답다.

문주란 자생지는 물론 멀리 우도의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다.

제주의 봄 전령 중 으뜸은 물론 유채꽃이다. 원래는 3월 중순에나 망울을 터뜨리지만 벌써 꽃바다가 열려있다. 유채 농가에서 관광객을 맞으려 일찍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촬영하는 데 한 사람 당 500원 또는 무료. 지난 해에는 1,000원이었는데 대폭 할인을 했다. 유채꽃의 명소는 성산 일출봉 주변.

그렇지만 올해에는 서귀포의 기암절경인 외돌개가 빨랐다. 외돌개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100 평 남짓한 유채밭을 일궜다.

키가 어른 허리만큼 자랐고 꽃은 만개했다. 옆에 필름을 파는 좌판이 있는데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3월이 절반쯤 지나면 진짜 제철 유채꽃이 망울을 터뜨린다. 섬 전체가 노란 띠를 두를 것이다.

유채꽃에 머물다 기운을 얻은 봄은 산록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라산의 능선은 완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도로의 상한선인 해발 1,100㎙보다 높아지면 키 작은 나무와 풀만 자란다.

깔끔한 능선이다. 봄볕을 받는 그 능선은 푸른 잉크를 넣은 온도계와 같다. 신록의 기운이 올라간다. 하루가 다르다.

어제 중턱에 머물렀나 싶으면 오늘은 꼭대기 바로 밑에 닿아있다. 신록과 함께 산 둔덕은 생명의 소리로 넘친다. 말이 뛰놀고, 소가 긴 울음을 운다.

가끔 길을 가로 막는 노루를 볼 수도 있다. 즐거운 비명이 터진다. 1100도로, 5ㆍ16도로, 1115, 1117, 1118번 도로는 모두 한라산 중턱을 끼고 도는 산록길이다. 길 아래로는 유채꽃 벨트가, 길 위로는 평화로운 목장이 펼쳐진다.

제주의 검은 현무암 해변에서는 지금 마지막 겨울을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낚시꾼들이 가득 모여 학꽁치를 잡고 있다.

꽁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학처럼 주둥이가 길어 학꽁치다. 고급 낚시 어종은 아니지만 회를 뜨거나, 말려서 구우면 맛이 일품이다.

학꽁치는 겨울고기이다. 2월 중순이면 철이 끝난다. 올해에는 유난히 겨울의 꼬리가 길어서일까. 입이 긴 학꽁치가 그 꼬리를 물고 여전히 연안을 배회하고 있다.

고기떼를 만나면 아예 낚시가 아니다. '퍼올린다'는 표현이 맞다. 낚시꾼들이 제주의 겨울을 걷어내고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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