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이 어렵사리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대기업의 면접 심사에 응하게 되었다. 시사와 정치, 전문 분야에 대한 질문까지 막힘없이 대답하던 이 여성은 다음 질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혀 더듬거리기 시작하였다."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인가?" 결혼과 상관없이 열심히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하면 가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이 될 것이고, 결혼한 이후에는 가정에 충실하겠다고 대답하면 직업의식이 없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인식될 것이다. 면접관이 듣고 싶은 정답은 무엇일까?
지난 주말에 여대생과 관련한 취업문제와 대책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최근의 심각한 경제 상황의 그늘 때문에 발표자도 토론자도 활기가 없었고, 이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갈 뾰족한 대안을 구하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침울한 토론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기업 인사과장인 한 남성의 발언은 다시금 우리 여성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여성의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여성의 직업의식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기업에서도 해마다 여성을 뽑지만 - 전체 신입사원의 겨우 5-10%란다 - 몇 년이 지나면 남아있는 여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신입사원을 뽑아 가르치고 훈련시켜, 겨우 쓸 만하면 전부 그만두니, 결국 여성인력은 투자비용만큼 효용성이 없는 인력이며,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이 취약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여성의 취업 곤란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이같은 지적은 사실 그동안 너무 많이 들어 지겹거나 진부할 정도다. 여성은 정말 직업의식이 낮은가?
얼마전 법원 판결에서는 사내 부부사원 중 여성에게 명예퇴직을 요구한 회사의 처사로 퇴직하게 된 농협 여직원들이 '여성차별 해고' 소송을 낸데 대해 원고패소 판정을 내렸다.
회사가 부부사원을 경제적 충격이 덜한 직원이라고 판단하여 부인이 명예퇴직을 안 할 경우 남편이 순환휴직을 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요구하고, 그 결과 762명의 사내부부 여성직원 중 688명이 명예퇴직 당한 이 사건에서 차별도 강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꿋꿋하게 직장생활을 계속하던 직업의식 있는 여성들은 이렇게 해서 한꺼번에 직장에서 내몰리게 되었다. 소송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 여직원들을 보며 농협의 간부들은 뭐라고 할까? 요즈음 여성들은 지나치게 직업의식이 높아서 문제라고 귀엣말을 나누고 있지는 않은지.
여성의 취업을 둘러싸고 이같이 이중적이고 비합리적인 인식과 관행들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직업의식 부족 운운은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다. 올해 초 미국에서는 이런 판결이 있었다.
지금부터 십 몇 년 전 어느 기업에서 여성들을 면접하면서, '당신은 여성이라 채용이 어렵다'는 의도를 은근히 내비쳤고, 이에 분노한 여성들이 이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며 소송을 한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이 소송의 판결은 회사가 여성을 차별한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채용 배제로 인해 그 동안 받지 못한 임금 분에 해당하는 돈을 이 여성들에게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여성들도 이제 면접에서 차별적인 질문을 받는다면 꼼꼼하게 기록해 둘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 지금 면접장에 들어가 있는 앞의 여성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일설에 의하면 정답은 '회사가 허락한다면 계속 다니겠다' 라고 한다. 이 질문을 넘어서고 나면 이제 다음 질문이 기다린다.
"당신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여성이 그 회사의 관문을 통과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이수ㆍ 상지대 인문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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