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채권은행들의 무차별 여신회수로 시작된 97년말 환란에서 모든 결정을 시장자율에만 맡겼더라면 한국은 완전 부도처리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디폴트(국가부도)' 직전에서 한국은 살아났고, 이는 미국의 개입 덕분이었다.미 정부안에서도 경제라인은 `불개입론' 편에 서있었지만, 국무부는 `한국이 무너지면 동북아 안보도 무너진다'며 대한(對韓)지원론을 굽히지 않았다. `종합적 판단' 끝에 미 정부가 내린 결론은 한국을 살려야한다는 것.
이 때부터 미 재무부는 금융기관들에 대해 `팔비틀기'까지 마다치 않으면서 여신회수를 중단시켰다. 대신 한국에 대해선 그 대가로 국제통화기금(IMF)를 통해 가혹한 구조조정을 강요했고, 진행상황을 일일히 감시했다.
2차 기업구조조정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현대건설 처리도 `한국식 환란해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채권자가 어음을 돌리든 말든 간여치 않고 모두 자율에 맡긴 뒤 현대건설을 부도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에는 현대건설 부도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종합적 검토'와 `확신적 결론'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정부도 채권단도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기업규모와 결과의 파장에 관계없이 무작정 자율만 외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미국정부가 `입체적 검토' 끝에 한국을 살려주기로 하고, 채권단의 여신회수를 중단시켰다고 해서 이를 `관치'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IMF가 대통령부터 서민에까지 뼈깎는 구조조정을 강제했듯이 정부나 채권단은 현대에 오너부터 임직원까지 무서운 채찍을 들면 된다. 필요하다면 오너십도, 재산도 몰수할 수 있다. 정부와 채권단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