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잔치가 열렸다. 맹인 잔치가 열린 것이다. 분단 55년 만에 전국 팔도에서 모인 봉사들이 몰려들었다. 애비를 만나러 온 딸, 50년 전에 헤어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러 온 아내, 형을 만나러 온 동생. 만나고 보니 참 우습구나야. 50년의 세월이 하룻밤의 소꿉놀이나 같구나야.어차피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꿈이냐 생시냐. 꿈이라면 깨지를 말고 생시라면 어디 보자.
심봉사도 잔치에 참석하였구나.
딸을 낳은 지 7일 만에 아내를 잃어버리고 근근이 동냥젖을 얻어먹이며 키운 심학규도 참석하였구나. 동냥젖 얻어먹여 키운 딸 심청이가 열다섯 되던 어느날, 딸이 돌아오지 않자 마중을 나갔던 심봉사는 그만 개울에 빠지고 때마침 살려달라는 심봉사의 외침 소리에 구해준 화주승이 이른 말.
“공양미 삼백 석만 부처님께 바치고 진심으로 불공을 드리면 어둔 눈을 떠서 대명천지를 볼지리다.”
심봉사 눈뜬다는 말을 듣고 앞뒤를 가리지 아니하고 덜컥 약조를 하였건만 삼백 석을 구할 길은 도무지 없어 캄캄하던 차에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심청이는 고민 끝에 남경장사에게 몸을 팔고 마침내 인당수에 빠져 죽었구나. 그리하여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였건만, 눈을 뜨고 싶은 욕심에 딸을 팔아 부처님 전에 바쳐올렸지만, 심봉사는 눈을 떴느냐. 여전히 봉사가 아니더냐.
마찬가지로구나.
공양미 삼백 석만 있으면 눈을 뜰 줄 알았던 심봉사처럼 광복 55주년이 흘러갔으나 우리 민족은 여전히 눈뜬 장님이로구나. 비행기 한번 뜨면 한 시간도 못 걸려 오고 가는 지척지간에 에미가 살아있어도 보지 못하고, 여편네가 살아 있어도 보지 못하였던 맹인들이었구나. 공양미 삼백 석이 있어야만 눈을 뜰 줄 알았던 심봉사처럼 우리 민족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전쟁을 하고, 형이 동생을 죽이고, 피흘리는 체제 경쟁을 하고, 무장간첩을 보내고, 사상 논쟁을 하면서 서로를 원수처럼 증오하여 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민족은 눈을 뜨지 못하였구나.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구나.
보아라.
보다 못한 심청이 애비를 만나기 위해서 맹인 잔치를 벌였구나.
그러나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애비를 보고 기가 막혀 산호주렴을 걷어잡고 버선발로 부르르르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뜨셨소, 봉은사 화주승이 공들인다 하더니만 영험이 덜하신가, 아이고 아버지,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죽던 심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심청이를 보옵소서. 심봉사 이 말을 듣더니 아니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혀, 나는 자식도 없고 아무도 없는 사람이오, 내 딸 심청이는 인당수에 죽었는디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웬 말이냐,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거든 깨지 말고 생시거든 어디 보자.
더듬더듬 만져보며 어찌할 줄 모를 적에 심봉사 감은 눈을 휘번쩍 뜨고 심청이를 바라보니 얼씨구나 좋을씨구 지화지화 좋을씨구.
눈을 뜨자 민족이여. 이제야말로 그러할 때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공양미 삼백 석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꿈 속으로만 그렸던 내 딸, 우리 민족의 소원인 통일의 얼굴 심청이의 얼굴을, 심봉사처럼 감았던 눈을 휘번쩍 뜨고 바라볼 그때가 된 것이다.
어두운 눈을 다시 뜨고 바라보니 천지일월이 장관이요, 갑자 사월 초파일날 꿈속으로만 보았더니 눈을 뜨고 다시 보니 그때 보던 얼굴이라. 아이고, 내 딸 청아, 어데 보자 이제 왔느냐. 어데 한번 다시 보자, 틀림없이 내 딸 청이로구나, 얼씨구나 좋을씨구, 얼씨구나 좋구 좋네, 지화지화 좋을씨구.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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