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분쟁으로 우리 정부의 통상정책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관행을 뛰어넘는 중국의 보복조치 뒤에 있는 노림수는 무엇인가. 중국정책에서 우리가 통합된 전략과 정교한 전술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 정부안에 팽배한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정책이 다듬어져서 수행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심사숙고해 볼 만한 일들이다.우리는 중국을 보다 새로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90년대 이후, 특히 홍콩반환 이후 그 정치적 위세가 등등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 힘이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여러차례 대미 통상마찰에서 드러나듯이 중국은 천문학적인 무역흑자를 내면서도 미국의 통상압력에 당당히 맞서는 등 국익을 최대한 챙기고 있다. 이는 중국의 국제 정치적 힘과 시장 잠재력에 바탕을 둔 것이나,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국 일본 유럽 등 경제 강대 세력간 경쟁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의 달라진 전략을 관찰할 수 있는 일이 21세기 세계정보통신 시장의 판도를 바꿀 IMT-2000 프로젝트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그 기술표준을 미국 퀄컴의 동기식(CDMA)을 택할 것이냐, 유럽의 비동기식(WCDMA)을 택할 것이냐에 따라 이동통신 시장 판도가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 상황이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식 기술표준을 택하는 데 양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자국 통신기술자들이 개발한 TD-SCDMA방식을 독자적 표준으로 삼기 위해 독일회사와 협력관계를 수립했다. 미국 이동통신기술 업계는 발칵 뒤집혔고, 유럽 업계는 중국시장을 겨냥해 그 표준에 맞는 단말기 제작을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중국이 독자 기술표준을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세계 경제무대에서 주연배우로 행세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 국제정치 흐름에서 단지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그치던 소극적 역할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위상이다.
우리가 별로 능숙하지도 못하면서 대미 정치외교에 매달려 오는 동안 세계는 너무 변했다. 국경이 많이 허물어진 것같지만 국익보호에는 냉혹하다. 국가간의 우호란 것도 이해의 궤적이 같을 때만 통한다. 팥죽같이 들끊다 마는 여론으로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많은 나라들이 중국정책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정작 중국을 냉혹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이 시급한 나라는 우리다. 두루뭉실한 연구와 정책으로는 국익은 물론 자존심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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