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교통 교육 쇼핑 등 모든 기반시설이 1960년대 수준입니다.” 지난달 용인에 살다 인근 분당신도시로 긴급 이사한 최모(41·회사원)씨는 “이제는 용인이라는 말도 듣기 싫다”고 고개를 내저었다.감사원이 뒤늦게 용인지역 난개발에 대한 감사에 착수키로 했지만 용인이 수도권에서 가장 ‘끔찍한 신도시’로 전락한 지는 이미 오래다.
용인지역 주민들은 해가 뜨면 출근걱정에 머리가 아파온다. 신갈5거리-죽전4거리를 거쳐 판교톨게이트까지 빠져나오는 데 평균 1시간이 걸릴 정도로 용인지역 교통사정은 세계최악의 교통지옥인 방콕을 방불케 한다.
90년대 초 용인지역 주민은 20만명 정도. 90년 중반 이후 무분별한 택지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올들어서는 4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용인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도로망은 10년전과 다를 것이 없다. 교통지옥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용인지역은 교육환경도 60년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학교간판을 내건 학교는 초등학교 36개, 중학교 16개, 고교 9개. 학교개수는 다른 지역에 못지 않다.
그러나 학교증설이 졸속으로 이뤄지면서 절반 이상은 교사 미완공 등으로 수업을 하지 못해 2부제 수업을 하거나 한 학교에서 고교생과 중학생이 함께 공부를 하는 학교까지 등장하고 있다.
용인에서는 물건사기도 어렵다. 용인시와 건설업자들이 아파트 짓기에만 혈안이 된 결과, 인근 분당에는 지천에 널려 있는 대형쇼핑센터가 용인에는 수지지역에 단 한 곳이 영업중이다.
최근 이곳 저곳에서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인 구성면 마북리 L아파트 주민 이모(34·자영업)씨는 “옷가지 등을 사기 위해 분당의 쇼핑센터까지 원정을 가곤 한다”며 “택시기본요금이 다른 곳은 1,300원인데 용인에서는 1,500원을 받고 있어 불이익이 더 크다”고 하소연했다.
또 건설업자들은 ‘분당 못지 않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선사하겠다’고 유혹하고 있지만 용인 아파트 건립지역에 조성됐거나 조성중인 공원은 한 곳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용인의 난개발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용인시와 건설업체들의 ‘무모한 계획’이 현실화 경우 2008년까지 택지가 분당신도시(500만평)에 버금가는 450만평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정도에서 난개발을 막지 못하면 용인은 되돌릴 수 없는 수도권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전문가 진단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수도권 주변 난개발 문제는 1990년대 초·중반 일시에 불어닥친 무분별한 규제완화 정책에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도시개발 관련제도인 농지법, 국토이용 관리법, 도시계획법 등이 규제완화 일변도로 흐르면서 민간기업들이 대거 택지조성공사에 뛰어든 때문이라는 것.
충북대 황희연(도시공학) 교수는 “난개발이란 거시적 계획없이 단일사업별로 진행되는 각개전투식 개발사업으로, 민간기업별로 지구단위 개발이 이뤄지는 용인시가 대표적 사례”라면서 “주거용량이 늘면 당연히 도로, 학교, 공원 등 기반시설이 따라야 하는데 이를 통제할 기본계획이 없으니 온갖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 연구위원은 “관련 법령의 정비가 채 끝나기전에 마구잡이식 도시개발이 이뤄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수도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면서 “용인시의 경우도 아직 구체적인 도시기본계획이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정리가 어려울 정도의 무계획적인 택지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 박헌주 토지연구실장은 “국토이용관리의 근본적 문제는 도시와 농촌과의 이원적 토지이용계획 운용으로 인한 실효성 저하”라며 “도·농 토지관리체계의 일원화, 행정구역단위의 통합토지이용계획 마련 및 준농림지역을 개발지역과 보전지역으로 세분화하는 작업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고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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