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일] 北서 간첩 몰린 김진경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일] 北서 간첩 몰린 김진경씨

입력
2000.03.14 00:00
0 0

다른 신부 여덟명과 함께 1998년 8월11일부터 17일까지 우여곡절끝에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하지만 가는 날부터 계획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 축성 10주년 기념 미사 봉헌을 위해 찾아간 것이었지만 그곳에서는 판문점서 열리는 통일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선전되고 있었다. 우리의 일정도 그쪽에서 정한대로 진행될 뿐이었다.그러니 우리 일행은 매우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계속 머물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라도 떠날 것인가를 놓고 적지않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평양에 온 이상 한번이라도 미사를 봉헌하고 떠나도 떠나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8월15일은 광복절이면서 동시에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에 오르셨음을 기뻐하는 대축일이기에 우리는 이 나라의 평화 통일을 위해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그 조건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신부 두 분이 판문점 행사에 참가하고 나머지는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성모 승천 미사를 기쁘게 봉헌했고 또 다음날 주일 미사까지 봉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타협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 우리가 움직이기는 참으로 힘들었다. 첫날부터 김일성 동상 순례로 시작한 우리 일정은 다음날 김일성 생가 방문으로 이어졌고, 또 다음날은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있는 금수산 궁전을 방문했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일정이었기에 매우 언짢은 마음으로 그냥 끌려다닐뿐이었다.

그때까지 우리 교회에서 약 80억원 정도의 물품을 북에 도와주었다. 우리 사제단에서만도 약 30억원 정도의 나눔을 실천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를 가보니 우리가 공연히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작년에 다시 우연한 기회에 중국땅 옌지(延吉)를 방문해 김진경 옌볜(延邊)대 총장을 만났다. 그는 98년말 북한에 들어갔다 간첩으로 몰려 두달간 심한 고초를 겪었었다. 하지만 옌지에 돌아와서는 다시 북한 돕는 일을 계속한다고 했다.

나는 김총장의 그 말에서 비록 북한에 갔을 때의 기억이 좋지 않다고는 해도 어려움에 처한 북한 돕기는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올 봄 옥수수 농사를 위해 비료를 보내려 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김승훈·신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