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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지켜진 師弟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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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지켜진 師弟약속

입력
200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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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22일 2시에 만나자" 제자 20여명과 감격포옹『제자들이 과연 저와의 약속을 기억할까요. 이제 30분후면 두시인데…』 22일 오후1시30분께. 경기 안양시 신성중학교(교장 최윤식·崔允植) 운동장에 선 신영봉(申榮峰·53·여)씨는 초조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교문쪽을 바라보았다.

이 학교에서 14년간 윤리교사로 봉직하다 95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신씨는 『새로운 세기 첫해 2월22일 오후2시에 학교에서 만나자』고 한 제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18일 귀국, 이날 약속장소를 찾은 것.

『학년이 바뀔 때마다 친자식 이상으로 정든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89년부터는 늘 마지막 종례시간마다 그날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어요』

막내딸인 유 윤(劉 潤·23)씨의 유학을 계기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에 정착한 신씨는 캐나다 한국일보 문화센터원장으로 근무하는 등 바쁜 이국생활 속에서도 제자들과의 약속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98년 자궁암 판정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어요』 수차례 수술과 항암치료로 지칠대로 지친 신씨에게 힘을 북돋아 준것은 제자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였다. 『선생님 언제 이민가셨어요. 2000년 약속 잊지 않으셨죠』. 신씨는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라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올들어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한 신씨는 제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교직시절 모아두었던 학생들의 일기와 자신의 수기를 모아 「어떤 약속」이라는 문집도 꾸몄다. 남편과 아이들은 신씨의 건강을 염려해 귀국을 말렸지만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신씨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오후 2시. 굳었던 신씨의 얼굴에 일순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훌쩍 커버린 20여명의 제자들이 학교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던 것. 『이 녀석들…』 그동안 제자들과 만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건넬지 천번도 더 생각해 왔지만 이날 제자들을 끌어안으면서 신씨가 한 말은 울먹이며 읊조린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선생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뒤늦게 자신들과의 약속이 선생님의 생명을 지켜준 힘이었음을 알게 된 「다 큰 아이」들도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덕수궁 앞…23년만에 '부라보콘 파티'

2000년 2월22일 오후2시의 재회약속은 또 있었다.

같은 시각 덕수궁 앞에서 김학민(金學敏·59·건대부고)선생님과 박충희(朴忠姬·41·여)씨 등 제자 40여명은 23년전 약속대로 감격의 재회를 했다.

1977년 성신여대 부속여고 2학년이었던 박씨의 반 학생들은 수학교사였던 김학민선생님과 간단한 「내기」를 걸었다. 체육대회때 박씨의 반이 어느 곳에 앉게 될 지 알아맞히는 것. 지는 쪽이 「부라보콘」을 사기로 한 내기에서 학생들이 이기자, 선생님은 『2000년 2월22일 오후2시에 덕수궁 앞에서 부라보콘을 사주겠다』고 칠판에 썼다. 『그때까지 약속을 기억할 수 있겠느냐』며 발을 구르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약속날짜가 성큼 다가온 이달 초 박씨는 부라보콘 제조사인 해태제과에 편지를 보내 사연을 소개하고 『오랫동안 부라보콘을 생산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수소문끝에 찾아 전화한 선생님도 약속을 잊지않고 있었다.

18일 박씨의 편지가 소개된 신문광고를 보고 약속을 기억해낸 친구들은 이날 선생님이 사주시는 부라보콘을 먹으며 울고 웃었다. 해태제과는 700원짜리 부라보콘을 이날 덕수궁입구에서만큼은 77년 가격인 100원에 판매했다./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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