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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게 그저 그런거라구요?"

입력
200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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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동」이다. 아주 사소한 일상이다. 개를 없애려는 자, 개를 찾아주려는 자, 개를 잡아 먹는 자, 개를 기르려는 자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 만화에서 제목을 따왔듯이 영화「플란다스의 개」는 그것을 환상적이며 황당한 만화적 상상력을 뒤섞어 그려간다.짖는 소리를 참지못해 남의 집 개를 지하실에 가두고 보니 성대수술을 해 짖지도 못하는 개였고, 그 개를 잡아먹은 아파트 경비원은 뜬금없이 보일러실에 얽힌 거짓 귀신이야기로 공포와 웃음을 자아낸다. 개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시간강사 윤주(이성재)가 나중에는 아내의 개를 애타게 찾으려 다녀야 하고, 개를 싫어하지 않게 되지만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삶의 아이러니. 우리의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때문에 사소한 일상과 희화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이 벌이는 「개소동」은 결코 어설픈 코미디가 아니다. 아파트 옥상에 널린 무말랭이, 지하철 앵벌이조차 웃음과 메시지의 장치로 활용하는 정교함과 계산을 지녔다. 다리 사이에 두팔을 집어넣고 웅크린 채 잠을 자는 윤주의 우스꽝스런 자세에는 궁상과 권태로움이 배여있다. 이런 것들이 농담처럼 때론 바보처럼 관객을 웃기지만 그속에는 현실풍자의 가시가 숨어있다.

그렇다고 가시를 노골적으로「삐쭉」내밀지 않는다. 순수를 지키려는 어려움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현남(배두나)의 어긋남의 반복속에 숨어있고, 세상과의 타협과 불타협 사이의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은 친구의 지하철 사고와 경비원 변씨의 이야기로 슬쩍 건드리고 지나간다. 현남이 아파트 옥상에서 개를 떨어뜨려 죽인 윤주를 좇는 장면에서 보여 준 느림과 빠름과 가까움과 먼 것의 적절한 조화와 의외의 결말. 그것은 이명세 감독의 평소 재치와 유머 감각보다 훨씬 귀엽고 발랄하다.

영화는 아내의 퇴직금을 뇌물로 써 전임강사가 된, 그러면서 죄의식을 갖고 있는 윤주와 순수를 지킨 현남을 어둠과 밝음으로 대비시킨다. 현남은 친구와 순수의 이미지인 푸른 숲속으로 들어가고, 윤주는 그 숲을 바라만 볼 뿐이다. 어둠 속에 숨어든 윤주에게 숲 속에서 현남이 거울로 반사시켜 보내는 빛은 강의실 어둠 속으로 숨어든 윤주를 향한 것이 아닐까. 봉준호 감독 식의 엉뚱하고 과장되고 수선스런 웃음이 남긴, 소동이 끝난 「플란다스의 개」의 자리에는 이렇게 깔깔한 맛이 남는다.

정적인 화면으로 구성되는, 일상의 무료함을 표현하는 초반은 지루하다. 강도 잡은 마을금고 여직원의 뉴스와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것에서는 상투성도 보인다. 그러나 배두나의 일상적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그와 짝을 이룬 뚱녀(고수희)의 존재도 인상깊다. 군더더기 없애기를 넘어선 생략이 불친절이나 스타일 과시가 아니라, 맛으로 살아난 점도 한국 영화로는 반가운 일이다. 19일 개봉.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 ☆은 절반, 평가 한국일보 문화부)

잃어버린 개를 찾아나선 윤주(이성재)와 현남(배두나). 그러나 그 마음은 푸른 숲과 어두운 강의실 만큼이나 다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봉준호 감독의 말] "황당한 세상이지만 진실은 있다"

내용이나 스타일이 나의 단편영화 연장선상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농담처럼, 낄낄거리며 보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 뼈와 가시가 있는. 평소 나의 이야기 스타일도 그렇다. 웃기고, 슬프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코미디」가 아닌 특이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엇갈리고 뒤엉킨 「개판」같은 일상을 황당하고 만화적이며 코미디적인 요소를 뒤섞어 표현하는….

홍상수 감독의 인물을 통한 치밀한 일상묘사와는 다르다.

어둡고 비참하고 이율배반적인 일상을 날카롭게 해부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순수가 자꾸만 어긋나는 현남(배두나)과 순수하고자 했지만 타협하는 윤주(이성재)란 다소 희화화한 캐릭터의 권태로움과 히스테리, 죄의식, 아이러니를 「개소동」이란 일상의 충돌로 드러내려 했다. 그런만큼 자질구레한 것의 정교한 묘사와 배치가 중요했다.

사건도 없이 느리게 지나가는 초반이 지루할 것이다. 현남의 무료함, 뒤에 있을 작은 사건의 소용돌이에 속도감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효과적이지 못해 아쉽다. 지루하게 느낀다면 나의 계산 부족이다.

느닷없이 끼어 든,「스모크」에서 하비 키텔이 크리스마스 때의 일을 이야기 하듯, 아파트 경비원 변(변희봉)씨의 7분이나 이어지는 귀신이야기도 황당할 것이다. 순수와 타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윤주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했다.

거짓말을 실제 얘기처럼 들려주면서 세상을 찌르는 것. 바로 이 영화의 실체이다. 일상에 관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늘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겠다.

*봉준호 감독: 연세대 사회학과, 한국영화아카데미(11기) 졸업. 단편 「백색인」(93년), 「지리멸렬」(94년)의 감독을 거쳐 「모텔 선인장」(97년)에서 조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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