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한 정치개혁법은 「나눠먹기식 입법」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법의 몇몇 대목은 말 그대로 정치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혹평을 들을 만 하다.중복출마 허용과 함께 떨어진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석패율제를 도입하는 것이나, 의원정수를 줄이기는커녕 지역구를 늘리기 위해 전국구를 줄이고, 모호한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한 것 등은 누가 봐도 기득권 보호를 위한 정치권의 안면몰수식 행태다.
정치개혁 법안이 이렇게까지 간 것은 정치권이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여야 지도부는 원칙 없이 서로의 명분과 이해를 주고받다가 법안을 이 꼴로 만든 것이 아닌가 깊이 자성해야 한다. 소선거구제에 1인2표에 의한 정당명부제를 가미하는 것은 당초부터 어색한 짜맞추기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는 정당의 지역구도 타파라는 명분으로 이를 관철시키려 했고, 야당은 대안없이 버티기로 맞섰으며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 기준이 권역별에서 전국으로 변하고, 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복출마제와 석패율제가 도입됐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전국구 의원수가 줄어들어 지역구도 타파라는 당초의 의도는 희석되고 말았다. 원칙에 충실했으면 인구상·하한선 기준이 그렇게 해괴한 방식으로 결정나고, 4개의 도·농 통합구에만 예외적으로 분구를 인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권의 위계와 질서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닐 것이므로 의원의 기득권을 통째로 무시하라고 하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또한 의원의 수를 줄이지 않았다고, 정당의 선거보조금을 늘렸다고 무턱대고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의원의 수가 국가의 살림살이 규모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며, 선거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다면 「고비용 저효율 타파」라는 정치개혁 입법의 당초 취지를 어느 정도는 반영시켜야 했다. 정치권은 입 싹 씻고 그것을 무시했다.
앞으로 정치개혁 법안이 통과되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더욱 탄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낙선운동, 시민불복종 운동이 탄력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사회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은 남은 시간만이라도 각계의 지적과 비판을 받아들여 가능한 한 수용할 것이 있으면 수용하고, 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정치권을 위한 최선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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