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사람에게 언어는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절대 가치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모국어로 시를 쓴다는 일은 절망과 허무, 끝없는 회의와의 대결을 의미한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는 시인들. 그들에겐 이중삼중의 고통이 있다. 재미시인 김호길씨의 말처럼 그들은 조국뿐 아니라, 그 언어, 모국어를 떠나 있기에 우리말로 시를 쓴다는 것은 끝없는 절망일 수 있다. 모국어보다 현지어에 오히려 익숙한 이들이 쓴 시는 그래서 더욱 시가 언어의 예술임을 절감케 한다.「세계 한민족 시인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2000년 시의 축제」(태학사 발행)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동포 시인들의 모국어 시작품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사화집이다.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물론 인도네시아,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남미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79명의 시 2-3편과 시작노트, 약력을 함께 소개했다.
「손에/가시가 들어//다치면/아프다//고향, 너는 내/가시든 살점」이라고 재중동포시인 김철씨는 「고향무정」에서 노래한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김명지씨는 「미망의 나라에 묻어둔 너의 영욕과/끝없는 영감이 비상을 멈춘 이곳/지금/누구의 갈증으로도 끝나지 않을/길이 박제가 되고 있다」며 고국을 떠난 시간을 「박제가 된 시간」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선집에 수록된 시들은 이같은 조국에 대한 애증 뿐 아니라 현지의 생활상,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시 고유의 탐색을 담은 것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당초 이 선집은 미주 한국문인협회를 창립(82년)한 김호길 시인의 구상으로 추진돼 200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완성됐다. 말미에는 구상, 고은 시인 등 국내시인 7명의 작품도 함께 수록했다. 김호길씨는 『다른 문화와 감성, 긴장과 갈등 속에서「나」의 정서를 유지하고 이끌어 내 언어로 형상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선집에 실린 동포들의 시는 『동포들의 자기 존재와 세계의 의미가 비로소 제 자리를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